일본 총선 다카이치 승리:
중도의 몰락, 지정학적·경제적 불안정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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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일본 총선에서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은 중의원 전체 465석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316석을 얻어 단독으로 개헌을 발의할 수 있는 최초의 정당이 됐다. 한 정당이 단독으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한 것은 태평양 전쟁 이후 처음이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유신회(36석)까지 포함하면 압도적 다수 의석이다.
자민당의 압승 요인으로 언급되는 것의 하나는 다카이치의 정치 스타일이다. 기존의 자민당 정치인들은 의뭉스럽고 고리타분하며, 집안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금수저에, 이해타산에 따라 파벌로 움직이는 인물들로 비춰진다. 반면, 다카이치는 흙수저에 자수성가한 인물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내뱉고 SNS를 이용한 소통에 능하다. 그래서 젊은 유권자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들이 있다.
첫째, 다카이치는 고물가에 대한 대책으로 식료품 소비세(8퍼센트)를 2년 동안 면제했고, 유류세 인하 정책을 펼쳤다. 또, 다카이치는 세금 감면, 재정 적자 감수 등의 케인스주의 정책으로 첨단산업을 지원해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들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연금 생활자와 서민의 마음을 끌었다.
둘째, 중국과의 대립이 다카이치의 인기를 높여 줬다. 2025년 11월 다카이치는 대만 주변에서 전함이 사용되고 무력 행사가 수반되는 봉쇄가 일어난다면 이는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존립 위기 사태는 일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뜻한다.
중국은 이 발언의 철회를 요구하며 희토류 수출 봉쇄와 한일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중국에 굽히지 않았고, 그런 태도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2010년 중일 해상 분쟁 때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봉쇄 압박에 굴복한 전례가 있었다.
셋째, 일본 야당의 상태는 매우 꾀죄죄하다. 일본의 주요 야당은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총선 직전에 급조해서 만든 중도개혁연합이었다. 공명당은 바로 얼마 전까지 자민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던 당이다. 게다가 중도개혁연합은 ‘원전 제로’ 정책을 포기하고, 집단적 자위권이 합법이라는 입장을 채택하며 우경화했다. 그러나 일본 유권자들은 어설픈 보수우익보다 “찐” 우익인 자민당을 선택했다. 중도개혁연합은 167석에서 49석으로 줄어 말 그대로 ‘폭망’했다.
총선 압승으로 다카이치 정부는 우경적 정책들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개헌으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려 할 것이고, 비핵화 3원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일본의 가치’를 위협한다며 250만 명에 이르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와 보조를 맞춰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정부의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은 아니다. 중의원 3분의 2를 얻었기 때문에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는 있지만, 여소야대인 참의원에서 3분의 2의 지지를 당장 얻기는 힘들 것이다.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시도는 대중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취약한 일본 경제 상황도 그의 약점이 될 수 있다.
다카이치는 대규모 감세와 확장적 재정 정책, 엔화 약세를 통한 수출 촉진 등으로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고 밝혀 왔는데, 안 그래도 막대한 일본 국가 부채를 더욱 키울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정부에서 리즈 트러스 모먼트*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실제로 다카이치가 총리로 취임한 뒤 엔화 약세와 일본 국채 금리 상승이 지속돼 왔다.
전임 총리 아베도 엔저 정책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한 바 있다.
다카이치가 “일본을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공약하면서 승리했지만, 그 약속이 정치적으로는 동북아를 더욱 불안정하고 위험하게 만들고 경제적으로는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