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이 말한다: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3월 2일 정오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 긴급 행동에서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이 한 연설 전문이다. 이날 행동 소식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연설하는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 ⓒ조승진

우리는 모두 전쟁에 반대합니다. 누군들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도 대선 선거운동에서 “전쟁 안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전쟁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이 “하지만”이라는 말 다음에 수많은 말들이 이어집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권력자들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저는 눈을 감고 상상해 봅니다….

저는 평범한 이란 사람 카디제 알리푸르를 기억합니다.

조그만 쪽지에 글을 쓰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조용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썼겠지요. 자신의 글을 누구도 읽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달 추운 겨울, 우리가 견뎌 내고 있는 바로 이 겨울에 그녀는 카라지에 있는 집을 나섰습니다.

등 뒤로 문이 닫힐 때,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녀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머니에는 바로 그 쪽지가 있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그 쪽지 말입니다.

그 쪽지에 담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란인이고, 노동계급의 자녀입니다. 제가 오늘 거리에 나선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 저의 고통을 비웃는 관료 당신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이란인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외세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자랑스런 아들딸입니다. 우리는 긍지를 가지고 시위에 나섭니다. 우리는 부패한 특권층 가문들에게서 우리 나라를 되찾고자 나섰습니다.

“우리는 거리를 지키며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란인이다.’

“우리는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투쟁할 것입니다.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란을 되찾을 것입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그녀는 쪽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서명했습니다.

“이란의 자녀.”

카디제의 이야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 한 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수많은 이란인들이, 소년·소녀와 학생과 영화인들과 교사들이 죽었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수많은 목숨들.

오직 평범한 삶을 원했을 뿐인 사람들.

저는 눈을 감고 질문해 봅니다. 하지만 전쟁, 카디제를 죽인 자들을 상대로 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카디제와 같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소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저는 그녀를 흔한 이란 이름인 ‘아레주’라고 부르겠습니다. 페르시아어로 ‘소망’, ‘꿈’이라는 뜻입니다. 그녀가 살아온 날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그녀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녀는 쪽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을 수도 있다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학교에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점심상을 차렸습니다.

그녀는 그 날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공격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떤 도발도 없었는데 자행된 그 불법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의 첫 몇 시간 사이에 그녀의 학교가 폭격당했습니다.

아레주와 같은 반 많은 친구들이 그날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위한 점심상은 주인을 잃은 채 그대로 남았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카디제와 아레주를 생각합니다.

테헤란의, 텔아비브의, 워싱턴 DC의 결정권자들 중 어느 누구도 카디제와 아레주의 생명을 그저 숫자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

아니, 우리는 ─ 그들에게 통계 수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이란이 공격받을 당시 저는 이란에 있었습니다.

저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도 하나의 숫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달 이란 거리에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란인들이 원하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평범한 삶.

그러나 그것조차 빼앗겼습니다.

1905년 이래로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란인들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상이한 세대, 상이한 운동, 상이한 전망이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사명이 있습니다:

존엄과 긍지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것.

아니오 ─ 저는 눈을 뜨고 생각합니다. 이란 정권의 잔혹함을 경험했더라도 전쟁에 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쟁은, 또 다른 무고한 민간인의 죽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란의 독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요.

아니오 —

저는 순진하지 않습니다.

저는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폭탄으로 자유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카디제를 위한 자유든, 아레주를 위한 자유든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란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정부를 1953년에 외세가 무너뜨리고 독재로 대체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우리 지역에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봐 왔습니다.

우리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내의 탄압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제가 발언하는 지금 이 순간에 어느 도시가 폭격을 당하고 있는지, 또는 누가 교수대에 오르고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어디선가 또 다른 어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자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한 세기 넘도록 이란인들은 법과 존엄과 자결권을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제국들이 세워지고 사라졌습니다.

독재자들이 권좌에 오르고 또 몰락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염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염원은 그 어느 정부보다도 오랜 것입니다.

그 염원은 그 어느 폭탄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테헤란의, 텔아비브의, 워싱턴 DC의 권력자들이 사라지고 오랜 후에도 ─

오늘날 냉혹한 힘의 셈법이 잊혀지고 오랜 후에도 ─

카디제와 아레주 같은 이름들은 남을 것입니다.

존엄을 위한 이란에서의 투쟁을 써 내려가는 것은 폭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투쟁을 써 내려가는 것은 이란의 민중입니다.

그 투쟁은 그들 모두의 죽음을 넘어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았던 눈을 뜨고, 크고 또렷하게 외칩니다.

전쟁 반대!

외세 개입 반대!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란에 자유를! 모든 정치수를 석방하라! 전쟁 반대! 민주주의 만세!

번역: 김준효
카카오톡 채널, 이메일 구독,
매일 아침 〈노동자 연대〉
기사를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 설치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