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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자유를 ‘방지’하려는 테러방지법

최근 한나라당 의원 정형근은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라고 발벗고 나섰다. “이번 윤 병장의 희생은 우리도 테러 예외국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줬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8월, 노무현도 “안보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테러 위협”이라며 테러방지법 제정을 “뒷받침하겠다”고 한 바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 편승해 파병을 적극 추진한 자들이 테러 위협 운운하며 테러방지법을 만들자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딕 체니의 아프가니스탄 방문이 윤 병장의 죽음을 불렀듯이 ‘테러’의 진정한 책임은 전쟁광들과 파병 추진자들에게 있다. 부시가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오히려 ‘테러’가 전보다 6백 퍼센트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테러방지법이 ‘테러’를 막는다는 주장도 어설프다. 미국과 영국의 테러방지법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철저하게 점령지를 통제하는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 공격을 막지 못한다.

사실, 지배자들이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방지’하려는 진정한 대상은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 자신들의 전쟁에 반대하는 언론과 운동이다. 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가한 각국 정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테러와의 전쟁은 민주주의와의 전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합리화되는 “고문·비밀감옥·비합법적 내부감시·헌법 부정 등은 이제 앵글로-색슨의 코드”가 됐다는 것이다.

내부감시

실제, 부시의 전쟁은 그 미사여구와 달리 인권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파괴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만연한 고문과 야만적 인권 유린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와의 전쟁’은 제국 내부에서도 벌어진다. 미국과 영국의 전쟁광들은 헌법과 의회의 통제조차 거추장스러워 한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민주적 장치조차 귀찮은 장식품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애국자법·국토안전법·테러방지법 등을 도입해 보안기구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넘겨 주었다.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고(테러방지법의 모호한 기준에 따르면 반전 표현물을 지니기만 해도 구금될 수 있다), 전쟁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도 국가의 일상적 감시 대상이 됐다.

게다가 이런 법들은 무슬림 혐오를 부추겨 인종적 편견을 확산시켰다. 제국의 지배자들은 마녀사냥과 공포를 동원해 민주주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고문과 인권 탄압의 대명사인 국정원 등 권위주의 통치의 유산에 반대하는 정서와 강력한 파병 반대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은 ‘민주주의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좌절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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