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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헌:
군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5월 14일 개헌 국민투표법이 가결됐다. 이 법은 공무원과 교육자의 ‘지위를 이용’한 운동을 금지하는 등 저항 운동에 대한 노골적 탄압을 포함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충분히 심의하지도 않은 채 헌법 개정을 무턱대고 강행하고 있다.

왜 지금 개헌 문제인가?

전후 일본 보수 세력이 개헌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는 1950년대 기시 정권이었고, 두번째는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이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세번째 개헌 책동은 보수 세력이 본격적으로 총력을 다해 시도하는 것이다.

개헌 책동이 본격화한 첫째 요인은 일본 자본의 세계화다.

패전 후 일본은 미일 안보 체제 하에서 군사적 부담을 미국에 의존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부활한 독점자본은 국내에서는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체계]을 축으로 한 일본형 기업·사회 통합으로 노동자를 분열 지배하고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었다. 일본은 이런 높은 경쟁력으로 상품 수출에 전념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80년대에 이런 산업 구조가 커다란 전환을 맞았다. 1985년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를 계기로 [일본의 독점자본은] 급속히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게 된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자본은 임금이 압도적으로 낮고 노동법제나 환경 규제도 유연한 아시아 나라들에 빠른 속도로 자본을 투자해 일본 자본의 다국적기업화를 완성한다.

국외에 투자한 자본을 지키는 것은 이제 일본 총자본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이를 지키기 위해 국외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헌법 9조였다. 그래서 1950년대와 1980년대의 개헌 책동과 달리, 1990년대 이후에는 헌법 9조를 개정하라는 강한 압력이 자본가 계급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둘째, 미국이 일본에게 군사력 부담을 요구한 것도 한 요인이다. 냉전의 붕괴는 옛 공산권과 이들의 지원을 받은 주변 국가를 통째로 자유 시장에 편입시켰다. 수십억 명이 사는 지역에서 세계화 때문에 계급 대립이 격화할 것이므로 이들 지역을 정치적으로 안정시키는 문제가 다국적 자본과 ‘선진국’의 공통된 이해가 된다. 미국은 냉전 시대 봉쇄 전략에서 ‘시장과 민주주의의 유지·확대’ 전략으로 방향을 돌리고 일본에 그 부담을 일부 요구한 것이다.

다국적기업화

헌법 9조가 개헌 문제의 초점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만 보면 개헌 책동의 근본 문제를 못 볼 수 있다.

자민당이 2005년에 작성한 새 헌법초안(2005년 작성) 전문은 이렇게 주장한다. ‘일본 국민은, 귀속하는 나라나 사회에 애정과 책임감과 기개를 갖고 스스로 지킬 책무를 공유[한다.]’ 그리고 제12조에 ‘국민의 책무’라는 제목을 붙이고 ‘국민은 이것을 남용해서는 안 되며,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항상 공익과 공공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유를 누리고, 권리를 행사하는 책무를 진다’며 권리와 의무를 결합해 놨다.

근대 헌법은 인민의 권리를 위해 인민이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제한 규범이다. 따라서 헌법에 ‘국민의 책무’가 쓰여 있다면 근대적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국가에 협력해야 할 국민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아닌 헌법을 제정하려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은 고이즈미 시대부터 본격화했지만,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등 권리의 기초를 규정하는 [현행] 헌법은 향후 신자유주의를 더한층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된다. 전쟁이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민중을 탄압하는 데도 [현행] 일본 헌법이 장애가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헌 반대 운동의 과제

일본 좌파들은 대부분 개헌 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아 ‘헌법을 지켜라’ 하고 외친다. 그러나 운동 속에 청년층이 너무 적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효과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세 인식이 너무나 일국적이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일본이 벌이는 전쟁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본 자본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좋은 조건의 국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가난한 주변국이나 지역분쟁에 개입하는 경찰 전쟁이다. 이것은 방위 전쟁도 아닐뿐더러 제국주의 간 전쟁도 아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에 무비판적인 많은 일본 좌파가 주장하는 ‘미국의 전쟁에 말려든다’는 논리는 노동자·민중(특히 젊은이)에게 설득력이 없다.

또, 많은 일본 좌파가 [일본] 제국주의에 무비판적인 것은 그들의 역사 인식 결여 때문이기도 한다. 일본의 근대화는 대만이나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 지배에서 시작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전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 전쟁의 이미지는 히로시마·나가사키로 상징되는 피해자 측면이 주되고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를 했다는 가해자 측면은 일반적으로 잊혀져 있다. 원래 헌법 9조 자체는 [미국이] 냉전 체제에서 일본을 반공(反共)의 성채로 만들기 위해 천황을 면책하고 천황제를 온존하려고 미국이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좌파도 1990년대까지 전후보상 운동에 완전히 소홀했으며 현재도 배외주의에 대한 비판이 지극히 약하다. 일본의 노동자·민중이 내면화하고 있는 배외주의를 극복하고 국제적인 연대를 구축하는 데서 역사 인식 왜곡에 반대하는 투쟁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둘째, 청년들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주체 문제가 있다.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40대 이상이며 청년층은 유감스럽게도 거의 없고 가끔 있어도 조직되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의 청년들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장 억압받고 분열 지배되고 있는 사회집단이라는 것과 관련 있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보다 10년 늦게 신자유주의 개혁을 시작했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특히 2000년 이후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로 인한 피해를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받고 있으며 이것이 운동에서 세대 간 분열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젊은 세대와 연대하기 위해서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 조직화 전략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40대 이상의 구세대는 자신들이 젊었을 당시의 이론이나 투쟁 형태를 무비판적으로 되풀이할 뿐, 새로운 투쟁 방법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지향할 것인지 하는 물음에 많은 일본 좌파가 침묵한 채 헌법 문제와 그것을 결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개헌에 반대하는 효과적인 투쟁은 분열된 젊은 층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구래의 평화 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고립·분열돼 있는 그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이 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장을 운동이 어떻게 잘 만들 수 있느냐가 열쇠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헌법 문제가 사회 변혁과 어떻게 결합돼 있는가라는 물음에 회피하지 않고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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