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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자본주의, 세계화

2002년 4월 16일 국립보건원 방역과는 1~3월 국내 에이즈 발생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퍼센트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보건원 관계자는 젊은이들의 성 개방 풍조 때문에 20~30대 감염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 개방 풍조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에이즈는 단지 성관계를 통해서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수혈을 통해서도 감염돼 어린 아이가 환자인 경우도 흔하다. 성관계를 맺는 경우에도 콘돔 사용 등 안전한 성관계를 맺는다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 에이즈는 분명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에이즈말고도 치명적인 질병은 많다. 예컨대 만성 간염과 에이즈는 특징이 비슷하다. 그러나 간염 걸린 사람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에이즈를 둘러싼 이데올로기는 가족 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성을 억압하는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

미국 국립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최초 에이즈 감염자들을 모두 동성애자들 중에서 찾아 냈다. 이런 노력은 에이즈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와 대비되는 소극적인 대응, 더딘 치료제 개발, 턱없이 비싼 약값과 등을 감추려는 시도다. 에이즈가 “특별한 질병”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에이즈의 원인이 아니라 에이즈의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데 이용된다. 지난 6월 10일 정부와 언론이 에이즈에 걸린 매춘 여성이 일부러 에이즈를 퍼뜨린 것처럼 비난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최근 에이즈 환자들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비 지원을 중단했다. 한 번에 20여만 원이 드는 이 검사가 보험 적용이 안 돼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윤락행위는 단속 대상이지 보건소의 검진 대상이 아니”라며 매춘 여성을 억압하는 정부 방침이 에이즈 예방을 어렵게 만든다. 매춘 여성이 에이즈 확산을 낳는 게 아니다. 여성이 몸을 팔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난과 매춘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정책이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다.

죽음으로 내몰린 세계

지난 6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막한 세계 식량정상회의는 선진국 정부들이 에이즈를 퇴치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줬다. 빈곤과 에이즈를 퇴치하기 위해 모인 이 회의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스페인과 개최국인 이탈리아만 참석했다.

지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 전체는 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전 세계 에이즈 환자 3천6백만 명 중 70퍼센트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1천2백만 명의 아이들이 에이즈로 부모를 잃었다. 이 숫자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 6년 동안 유럽에서 생긴 고아 수와 비슷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짐바브웨의 15세 청소년 절반이 에이즈에 걸렸다.

그러나 이들 중 단지 0.1퍼센트만이 어떤 식으로든 치료를 받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사형수처럼 곧 맞이할 고통스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2001년 3월 5일, 다국적 거대 제약 회사들 ―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화이자, 메르크, 베캄, 엘리릴리, 베링거 인겔하임, 브리스톨 마이어스, 로슈 등 ― 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상대로 소송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하려고 1997년부터 값싼 에이즈 약을 생산해 왔다. 제약 회사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약상 지적재산권을 침해했으니 특허권이 있는 약품 ― 에이즈와 그 합병증을 치료할 모든 약 ― 생산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제약 회사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은 인도 회사 시플라를 상대로 특허권 소송을 냈다. 시플라는 인도 내에서 값싼(미국 약값의 20분의 1에서 50분의 1 가격)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해 왔다.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은 천식 치료제를 1달러에 판매하는 시플라가 같은 약을 27달러에 판매하는 거대 제약 회사들의 “정당한” 이윤을 갉아먹는 “해적”이라고 비난했다. 인도인 1인당 연간 보건 예산은 10달러다. 거대 제약 회사들은 소송에서 승리했고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 정부들은 더 이상 값싼 복제 약품을 생산하거나 수입할 수 없게 됐다. 거대 제약 회사들은 아프리카와 미국 등지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고 압력에 밀려 몇 가지 약품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하루 약값이 2만 원인 약이 2천 원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에이즈 환자들 중 하루 수입이 1천 원 미만인 사람이 절반에 가까워, 약값 인하는 큰 도움이 못 된다. 서아프리카의 말리는 인구 1인당 1년 총 보건 예산이 5천 원도 안 된다.

국제적인 빈민 구호 단체인 옥스팜은 비싼 약값이 매년 1천1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말했다. 그 중 절반은 어린 아이들이다.

에이즈의 원인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다. 그러나 에이즈는 빈곤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 치명적인 ― ‘위력’을 발휘한다. 1991년 11월 HIV 감염으로 농구를 그만둔 매직 존슨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하다. 42세인 매직 존슨은 FBC 은행 최대 주주이자 로스앤젤레스와 애틀랜타 등지에 극장과 쇼핑몰을 갖고 있다. 매직 존슨은 상당한 수준의 스타벅스 체인점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로스앤젤레스에 TGI 레스토랑도 몇 개 소유하고 있다. 매직 존슨은 힘없이 죽어 가는 아프리카인들과 달리 지금도 스타벅스 커피가 얼마나 팔렸는지 점검하고 칵테일 재료가 떨어지면 금세 알아채 담당자를 심하게 꾸짖을 정도로 건강하다.

세계화의 그림자

거대 제약 회사들은 한 해 이윤이 수십 조 원이다. 세계 5대 제약 회사의 총 자산이 멕시코와 인도 경제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 또, 사하라 이남 지역의 전체 경제 규모보다 두 배나 크다. 1998년 한 해 미국 제약 회사들은 1백19조 원을 벌어들였다.

제약 회사는 이윤 중 단 0.2퍼센트만을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설사, 폐렴, 결핵 치료제 개발에 썼다. 반면, 1997~1998년에 미국제약협회는 로비를 목적으로 미국 의회에 2억 3천6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1990년 한 해 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에 로비 자금으로 1천4백만 달러를 지급했다.

제약 회사들은 WTO 지적재산권 규약을 이용해 각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 규약은 인간의 삶보다 제약 회사들의 특허권을 보호한다. WTO 지적재산권 규약은 앞으로 20년 간 거대 제약 회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약을 생산해 싼 값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 미국 정부, 유럽 선진국 정부들, 일본 정부가 WTO의 이윤지상주의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제약협회는 값싼 약을 수입하거나 생산하는 나라들에 무역 제재를 가하라고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미국 정부는 제약 회사가 요구한 대로 인도, 도미니카 공화국, 대만,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포함한 30개 국에 무역 제재를 가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에이즈 위기를 확산한다.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하는 내핍 정책 때문에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한국의 보건 시설이 상당수 붕괴했다. 버마, 베트남, 중국에도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IMF가 강요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부채 상환은 1990년대 내내 아프리카에서 7백억 파운드(약 126조 원)를 빨아먹었다. 이 돈의 일부만으로도 에이즈로 죽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거대 제약 회사와 서방 정부들이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무상으로 약을 공급하라! 부채를 탕감하라! 보건과 복지를 위한 긴급 프로그램에 예산을 배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