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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국내에서 벌이는 전쟁

미국이 국내에서 벌이는 전쟁

강철구

조지 W 부시가 애써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이 탄로났다. 부시 일당이 9·11 테러 전에 항공기 납치 음모에 대한 경고를 무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5월 13일치 〈뉴스위크〉는 FBI(연방수사국)와 CIA(중앙정보국)가 9·11 테러를 예방할 수도 있었던 숱한 정보를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는 처음에 이를 일축했다. 부시는 오만하게 “FBI는 할 일을 다했다”고 말0했다. 그러나 FBI 요원 롤리는 9·11 테러 직전에 FBI 본부가 테러 용의자에 대한 수색 영장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궁지에 몰린 부시는 테러 예방 조치가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부시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전쟁 준비와 경찰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부시는 6월 6일 “본토 방어는 대통령의 지상 과업”이라며 국토안전보장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국토안전보장부는 17만 명의 인원에 1년 예산이 3백74억 달러(약 50조 원)에 달하는 공통 기구가 될 것이다. 국방부에 이어 두번째 거대한 정부 부서다. 국토안전보장부는 FBI와 CIA를 포함한 9개 기관의 대테러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그러나 국토안전보장부는 테러를 결코 근절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테러의 원인이 되는 고통과 분노, 절망과 좌절을 더욱 키우는 부시의 전쟁몰이 도구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시민적 자유에 대한 공격

부시는 계속 아랍인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9·11 테러 뒤 2천여 명이 구금됐다. 기소나 재판 절차도 없었다. 구금된 대다수는 평범한 아랍 청년들이었다. 뉴저지에 사는 이집트인 모하메드 오마르(19살)는 단지 탈레반 최고 지도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억류됐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명의 아랍인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 미국 지배자들은 아랍인뿐 아니라 “테러와 연관된 나라”의 국민도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한다. 약 35개 국가 국민들은 미국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다. 미국 정부는 방문자들의 체류 시한도 현행 6개월에서 30일 안팎으로 줄였다. 외국인 유학생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유학생 온라인 추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의 한 인권 단체는 “빅 브라더의 ‘21세기 전체주의’가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고 비판했다.

법무부 장관 존 애슈크로프트는 5월 30일 “FBI 요원들에게 대상자의 동의 없이도 공개 장소에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FBI는 이제 정치·종교 단체를 마음대로 사찰할 수 있다. 전화를 도청하고 인터넷 웹사이트와 채팅방 등도 사찰할 수 있다.

미국 시민자유동맹의 로라 머피 국장은 “9·11 테러를 예방하는 데 실패한 FBI가 도리어 이를 빌미로 헌법에서 보장한 시민권을 파괴하려 한다”고 ‘FBI 개혁안’을 강력히 비판했다.

FBI 국장 로버트 뮐러는 “반테러 활동에 한정해서만 엄밀하게 국내 감시 권한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테러와 무관한 평범한 사람들이 당하는 억압을 보면 뮐러의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FBI의 추악한 역사는 FBI가 미국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시민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괴롭혔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76년 미국 상원 보고서는 당시 FBI가 50만 명의 미국인에 대한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저명한 흑인 민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해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유명한 소설가도 감시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FBI가 작성한 1만 5천 명의 “보안 대상자 목록”에는 반전 운동가, 사회주의자, 흑인 해방 운동가 등 대부분 좌파 성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국가 비상시” 기소나 재판 없이 체포될 운명이었다. 1969년에 급진 흑인 단체인 흑표범당의 지도자 프레드 햄프튼과 흑표범당원 마크 클라크가 기관총으로 무장한 시카고 경찰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FBI가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폭로된 정보 기관의 파렴치한 행위에 미국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대중의 불신과 압력에 떠밀려 FBI는 “국내 첩보 수집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FBI는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26년 만에 시민적 자유를 유린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됐다. 마틴 루터 킹은 1967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베트남에 있는 폭탄이 국내에서 폭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벌이는 제국주의적 전쟁이 국내 정치 억압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꼬집은 말이다.

국민이 전쟁의 동기와 비극적 참상을 알게 되면 전쟁에 대한 지지는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권력자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이 바로 그랬다. 미국 내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전 운동은 미국 군대가 베트남에서 물러나도록 만들었다.

부시는 반전 운동의 싹을 제거해야 “끝없는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시가 미국 내에서 정치 억압을 강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시의 더러운 책략

6월 9일 부시는 자국민 압둘라 알 무하지르를 “적의 전투 요원”이라 규정했다. 법무부 장관 존 애슈크로프트는 무하지르가 “더러운 폭탄” 공격을 계획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무하지르가 테러를 준비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진실을 알 수 없을지 모른다. 변호인 접견이 금지됐고 재판도 열리지 않을 계획이다. 6월 11일치 〈타임〉은 “압둘라 알 무하지르가 구체적인 테러 음모를 꾸몄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도 “실제의 테러 계획은 없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부시는 무하지르가 테러를 “구상”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기한 구금하려 한다.

그러나 테러를 “구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테러를 실제로 저지르는 자들이 부시 일당이다. 미국의 전쟁광들은 세계를 전쟁 분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들은 핵무기 선제 공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는 핵전쟁 공포를 일으키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악한 지배자들을 후원했다. 또,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자들이 조성한 무하지르의 “더러운 폭탄” 위협은 얼마나 더러운 사기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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