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과 상관 없는 ‘내신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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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대학들이 중상층 자녀들을 위한 입시정책을 펴왔다는 건 상식이다. 일류대학들은 왜 내신을 싫어할까?
내신이란 건 일종의 할당제다. 내신이 사라지면 이 할당이 없어지고, 전국의 아이들이 성적순으로만 대학에 가게 된다.
성적이 높은 아이들이 선발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왜 성적도 나쁜 아이들이 내신 할당이란 특혜를 받는단 말인가.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선 더 이상 성적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조물주의 조화로 서울 강남에는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태어나고, 강북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 다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전라도에서는 공부를 안 할 아이들만 집중적으로 태어나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분명히 지역에 따라 아이들 성적이 나뉜다. 왜 그럴까?
아이의 성적이 부모의 재산과 문화자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잘 나온다는 생각은 한국 사회에선 망상이 된다. 사교육비를 최대한 많이 댈 수 있고, 거기에 여유 있고 학력 수준이 높은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아이들이 가장 성적이 잘 나온다.
만약 내신 없이 전국 성적순으로만 아이들을 선발한다면 결국 부모 재산순으로 아이들이 나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못 사는 집 아이들에 대한 차별이다.
그런데 내신을 강화한다고 해서 성적과 부모 재산이 연동되는 입시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할까? 전국 단위 성적 경쟁의 관건이 부모 재산이었듯이, 학교 내의 성적 경쟁에서도 관건은 부모 재산이 될 것이다. 내신 강화를 둘러싼 대립은 서울 강남 부자와 지방 토착 부자간의 대립일 뿐이다. 민중의 자식은 이 입시 구조 속에서 전형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들러리만 설 뿐이다.
성적순
내신이 강화돼도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입시 경쟁으로 겪는 고통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심화할 수 있다. 고등학교 내신으로 대학 선발을 하게 되면 학생은 고등학교 기간 3년 내내 입시를 치르게 된다. 단 한 번 치르는 입시로도 피가 마르는데 어떻게 3년 내내 입시를 치르란 말인가? 잔혹한 일이다.
문제는 대학서열체제다. 전국 1위 서열 대학이 존재하고 그 대학에 들어가려는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민중은 영원히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왜 특정 대학이 최고 성적 아이들을 총망라해서 독식해야 하는지, 이 부분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하면 내신 강화 같은 엉뚱한 대립으로 사회의 역량이 소모되게 된다.
왜 우리가 입시 경쟁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입시 경쟁제도 존폐를 둘러싼 대립이 주전선이 돼야 한다. 오직 이 전선만이 민중의 실질적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있는 진정한 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