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의식은 어떻게 바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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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의식은 어떻게 바뀌는가?
온 국민이 월드컵 대회에서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 팀을 응원하고 있다. 이를 지켜 보다 보면 과연 사람들의 민족주의 관념이 바뀔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흔히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자동차, TV, DVD 플레이어를 갖고 싶어한다. 그들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에 가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이러한 주장들은 때때로 사람들의 생각이 확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자본주의는 그 존재를 정당화하는 관념을 쏟아 낸다. 그리고 일상 시기에 대다수 노동자는 이러한 관념을 받아들인다. 19세기에 칼 마르크스는 “지배적인 관념은 지배 계급의 관념”이라고 말했다. 학교, 기성 신문, TV는 소수 특권층만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떠들어 댄다. 이런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국가는 중립적이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지켜 준다고들 한다.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직업과 자원을 얻으려고 경쟁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가 돼야 한다. 사회 최상층은 민족주의, 인종 차별, 성 차별 관념들을 부추겨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역사 내내 노동자 투쟁은 거대한 반란으로 분출했다. 이런 분출에는 1871년 프랑스, 1917년 러시아, 1920년 이탈리아, 1936년 스페인과 프랑스, 1972년 칠레, 1975년 포르투갈, 1979년 이란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1998년 인도네시아, 2000년 세르비아,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정부를 전복한 대중 봉기가 있었다.
이런 격변들은 자주 위기에 빠지는 자본주의 자체의 본성에 의해 더욱 격화된다. 자본주의는 모두에게 번영을 약속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경제 침체기에는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공격한다. 자본주의 관념의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런 공격을 많은 부분 수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더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때가 찾아온다.
그 때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노동자들은 사장들이나 정부에 대항해 행동한다. 소수 노동자들은 언제나 그 사회의 지배 관념을 거부한다. 대중 투쟁이 벌어지면 이 소수의 견해에 공감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난다.
노동자들은 전에 받아들인 관념들과 모순되는 실천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소규모 투쟁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그러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때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남·여, 흑인·백인, 동성애자·이성애자 사이에, 그리고 민족 간에 분열을 낳는 낡은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분열은 노동자들이 공동의 적 ― 사장이나 정부 ― 에 맞서 단결하면 사라질 수 있다. 자본주의는 사장들이 공장, 사무실, 작업장을 통제하고 국가 권력을 지배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예컨대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에 맞서 공장 점거에 돌입해 사장과 충돌하면 정부와도 충돌하게 된다. 사장은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자기 재산을 “되찾기” 위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장에게 도전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윤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을 방어하는 투쟁을 벌이면서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업이 벌어질 때 전에는 자신없어하던 사람들이 노동자 대중 집회에서 연대를 강화하고 더 많은 행동을 하자고 호소하는 연설을 한다.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전략·전술을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다. 대규모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민중이 어떻게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대규모 저항이 분출하는 과정에서 사회뿐 아니라 사람들도 변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체제를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