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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총련 투표 전술을 비판한다

서총련 투표 전술을 비판한다

김인식

종종 낡은 주장들이 새로운 형식으로 부활하곤 한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지지율이 민주당의 김민석을 앞지르자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은 ‘6·13 지방 선거 서총련 투표 전술’을 내놓았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낙선시키고 당선 가능한 후보[민주당의 김민석]에게 투표를 할 것이다.” “이회창 패거리들이 집권하면… 6·15 공동선언이 이행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냉전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은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34년 동안 일당 독재를 통해 우리 삶을 망쳐 놓았다. 이 당의 재집권을 막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 시장 후보 이문옥 지지 대학생 모임 깨끗한 손 fresh’(깨손 fresh)이 옳게 주장했듯이, “한나라당 낙선과 당선 가능한 민주당 후보 지지는 분명 다른[것이다.]” 서총련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이것은 정확히 ‘차악’ 논리다.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차악’ 논리를 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히틀러를 막기 위해 보수주의자인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 그러나 여섯 달 뒤에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했다. 그 10년 전에, 이탈리아 사회당은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막기 위해 자유주의자들에 의지했다. 1922년 10월, 자유당 국회의원들은 무솔리니 정부를 지지했다. 사실,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고 있는 게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민주 개혁 요구를 거부하고 시장 개혁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정책을 폈다. ‘깨손 fresh’도 “김민석과 민주당이 낙선한다 해도, 그건 그들이 민중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고 정확하게 비판했다더구나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다. 만약 민주당 지지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 정당은 출마하지 말고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실패를 공격하면서 우파적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정당이 민주당을 지지해 출마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나라당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납으로 칼을 만들 수 없듯이, 민주당은 결코 수구 세력을 꺾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는 바다에 물 갖다 붓는 꼴이다. 바로 김대중이 지난 5년 동안 이 점을 여실히 보여 줬다. 그런데 또다시 과오를 반복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히려 비통해 하는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한나라당이 이용하는 주장들의 허구를 폭로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그런 사람들에게 현 상황의 진정한 대안을 보여 주어야 한다. 민주당에 표를 던지라고 촉구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차 투표에서 나찌인 르펜은 2위로 떠오른 반면, 사회당 후보인 조스팽은 무너졌다. 수백만 명이 르펜에 반대해 거리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시위대들은 르펜을 꺾기 위해 2차 투표에서 보수파인 시라크에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라크는 전에도 르펜과 뒷거래를 한 적 있고 앞으로도 르펜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그와 뒷거래를 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시라크의 공화국연합은 우파의 승리를 위해 르펜의 국민전선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자본주의가 이윤을 수호하기 위해 르펜 같은 나찌에게로 돌아설 만큼 절박한 경제 위기를 겪는다면, 그래서 파시스트의 권력 장악을 원한다면 시라크는 기꺼이 나찌에게 권력을 넘겨 줄 것이다. 힌덴부르크나 이탈리아 자유주의자들처럼. 게다가 좌파가 시라크에 투표하는 전례를 남기면 앞으로도 좌파는 우파를 지지하기 위해 선거 출마를 자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르펜의 국민전선이 총선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민중전선

서총련의 투표 전술은 우리로 하여금 1930년대 ‘민중전선’의 재앙적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민중전선’은 파시즘에 맞서 부르주아 정치 세력까지 포함하는 광범한 국민 연합(계급 연합) 구축을 뜻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좌파와 노동자 들이 수구 보수 세력인 한나라당에 맞서 중도 우파 정당인 민주당(또는 그 당의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1930년대에 ‘민중전선’은 모두 재앙으로 끝났다. 민중전선을 구성하는 세력들 간에 근본적 이해 관계가 충돌했다. 예컨대, 스페인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한결같이 토지·재산·교회·군대를 옹호했다. 그들은 파시스트 프랑코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이 제도들을 옹호했다. ‘민중전선’ 정부가 대토지 소유자들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면, 가난한 농민 대중이 반파시스트 운동에 동참할 동기가 사라질 것이었다. 그러나 ‘민중전선’ 정부는 끝내 농민의 투쟁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토지 소유에 강력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대부르주아지가 이 반파시스트 연립 정부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까딸루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도, ‘민중전선’ 정부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사유 재산 침범을 비난했다. 민주당은 기업주들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정당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노무현)은 근본에서 사장들의 이익을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민주당의 목표와 우선 순위는 노동자들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사기업화를 밀어붙이고 대량 해고를 옹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 지지 주장은 수구 세력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흔히 민중전선 옹호론자들은 좌파가 부르주아지를 견인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술이 아니라 자기 기만일 뿐이다. 민중전선의 결정적 오류는 좌파가 자신의 정치 활동을 자본주의 정당의 통제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동 행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운동을 건설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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