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변화 염원을 표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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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화 염원을 표현하려 했다
■ 부산 시장 선거
부산에서 여당은 한나라당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부산은 한나라당 영향력이 막강한 도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2조 4천억 원의 빚,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실업률, 교통난만을 부산 시민에게 안겨 주었다. ‘노풍’으로 중무장한 민주당은 역겨운 부패 추문만 국민에게 안겨 주었다. 삶의 질 하락과 썩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41퍼센트라는 낮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이것은 대중 급진화의 한 표현이다. 특히 지방 선거에서 대중의 급진화는 민주노동당 급부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선거 시작 전 4퍼센트였던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시장 후보 지지율 16.8퍼센트, 정당 지지율 10.67퍼센트, 비례의원 1명 당선에서 잘 나타났다.
선거 기간에 우리는 아주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우리보다 2~3배나 많은 한나라당 선거 운동원과 같은 장소에서 유세할 때도 우리는 정치 주장이 담긴 큰소리와 율동으로 기세를 잡았다. 그 때문에 한나라당 선거 운동원들은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2002년 지방 선거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과 우호적인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박수원
■ 서울 - 중랑2 선거구 시의원 선거
중랑구 제2선거구에서도 민주노동당 바람이 불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 후보 김혜련 씨는 득표율이 10.2퍼센트였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 중랑구에서 민주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으로 대중적 지지가 옮아갔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거 직후 실시한 〈동아일보〉 여론 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지방 선거에서 압승한 이유가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라고 답한 사람들은 8.3퍼센트뿐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보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사상 유례 없이 낮은 투표율이 그 증거다. 우리가 내세운 “민주노동당에 투표해 보수 정치 심판하자!”는 구호는 정말이지 시의적절했다. ‘선거’는 우리가 노동자들을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선거 전에는 연락하지 못하던 17개가 넘는 노동조합에 민주노동당을 알렸다.
우리는 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선거를 활용하기도 했다. 합동 연설회와 정당 연설회 때 40일 넘게 파업 중인 정오교통노조의 현안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노조원 중 투표 참관인을 선정해 참관비 1백12만 5천 원 전액을 파업 기금으로 모았다. 선거 운동 자원자들을 모아 노조 지지 방문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우리는 높은 득표율뿐 아니라 신입 당원 증가라는 조직적 성과도 거뒀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무려 14명이 지구당에 가입했다. 그 중 12명이 노동자다. 그들은 노동조합 운동을 뛰어넘는 노동자 정당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선거 다음 날 정오교통노조 파업장을 찾아 갔을 때, 노동자들은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에 감격해서 한 목소리로 “민주노동당!”을 연호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민주노동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여긴 것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노동당이 일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희망으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줬다.
이종우
■ 강원도 - 원주2 선거구 도의원 선거
지역 노동자 당원들이 열심히 선거 활동을 했다. 특히 만도기계 노동자들은 선거 기간 내내 적극 선거 활동에 결합했다. 마침, 선거 기간이 파업과 겹쳐 일부 노동자들은 지구당으로 출근하기도 했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회사에 휴가를 내고 교대로 선거 활동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여 주었다.
하루는 한 상점에서 여성 세 명과 약 15분간 ‘노무현 현상’과 ‘IMF 극복’을 토론했다. 한 여성은 “민주당도 싫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집권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 노무현이 민주화 운동도 했고, 노동자들 편에도 섰다. 그래서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우리 선거 운동원이 ‘노무현의 갈지자(之) 행보’와 ‘노무현이 김대중의 닮은 꼴’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결코 노동자·서민편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여성은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만 하는 것 아니냐”, “그래도 IMF는 극복하지 않았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평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수줍어하던 한 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김대중의 IMF 해결 방식은 “노동자들의 일자리 공격”이었다고 주장했다.
한 운동원은 “이번 선거를 통해 만도기계 동지들이 작업장 쟁점과 사회 문제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신정환
■ 서울 - 용산 구청장 선거
우리는 용산 곳곳을 누비며 부정부패의 진정한 대안이 민주노동당임을 알렸다. 용산 미군 기지를 되찾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는 유일한 정당이 민주노동당임을 주장했다.
주민들은 “불평등한 삶에 복지를”, “용산 미군 기지 반환”, “부정 부패 척결”이라는 우리 당 후보 공약에 박수를 보냈다. 지구당을 직접 찾아와 당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 선본을 감시하던 선거관리위원회의 한 여성도 선거가 끝난 뒤 당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용산 구청장 후보 김종철 유세 차량이 골목 어귀에 나타나면 보수 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은 “3번 또 왔다”, “내가 지금은 이 띠를 두르고 있지만 구청장은 3번을 찍을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용산 구청장 선거 운동은 한때 “데모하는 정당은 싫다”던 사람들이 진보 정당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직접 체험하게 해 줬다.
장우성
■ 서울 - 성동3 선거구 시의원 선거
성동구는 후보가 일하는 인쇄 작업장을 포함해 노동 조건이 열악한 여러 영세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런 작은 작업장에는 노동조합도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가 힘주어 얘기한 정책은 “중소·영세 업체 노동자 복지 확대”였고 이것을 위해 서명 운동도 했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 때문에 작업장에서는 서명 운동이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있는 작업장 노동자들은 유인물을 열심히 읽고 서명도 잘 해 줬다.
선거 운동하러 맨 처음 찾아간 곳은 현대자동차서비스였다. 작업장 노동 환경은 열악했는데도 이 지역에서는 그나마 가장 ‘좋은’ 곳이었다.
선거 운동에서 좋은 점은 슈퍼마켓 아저씨들, 영세 업체 노동자들, 과일 가게 아줌마들이 있는 동네에서 집집마다 찾아가 우리의 생각과 정책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수 정당들의 선거 운동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흔히 선거 운동원들을 모두 ‘아르바이트생’으로만 여긴다. 그래서 “노동자·서민들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 당원”이라는 것을 꼭 얘기했다. 그러면 사람들 대부분은 “수고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 노동당이에요? 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네.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수고하십시오.”처음 며칠은 지하철역 등 출 퇴근 길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후보 기호와 이름만을 외쳤는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하라”, “미군 기지 반환하라”, “노동자는 노동당에”를 외치며 지지를 호소하기로 선거 운동 방향을 바꿨다. 그 뒤로 이 호소를 듣고 “열심히 하라”며 음료수를 주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황재민
■ 인천 시장 선거
민주노동당은 인천에서 시장, 부평구청장, 시의원 4명(비례대표 1명), 구의원 6명 등 총 12명이 출마했다. 정당 득표율은 6.28퍼센트, 인천 시장 후보 득표율 5퍼센트였다. 부평구청장 후보는 19.12퍼센트의 표를 얻었다. 인천은 선거에서 거의 매번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 큰 지역이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도 전국 투표율 48.9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는 39.3퍼센트로 전국 최저다.
인천 지역 ‘다함께’ 회원들은 유세단에서 활동했다. 새내기 한 명은 유세단 활동 하루 만에 ‘다함께’ 회원이 됐다. 노동자 당원들이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유세단에 결합했다. 선거 기간 내내 월차를 써 가며 활동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우리 당 인천시장 선거 슬로건은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 주된 구호는 ‘부패 정치 척결, 고용 안정 쟁취’였다. 계급 투표를 목표로 당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 우리는 대우자동차, 대우종합기계, INI스틸, 동서식품, 주안5·6공단 사거리, 남동공단 입구 등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연설했다. 월드컵 기간에도 계속 파업하고 있는 택시 노동자 집회에도 참가했다.
우리는 보수 정당 선거 운동원들이 기호와 후보자 이름만 외치는 것과 달리 우리 정책을 요약한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기성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공약을 설명했다.
우리의 연설에 적잖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15분 남짓 하는 연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최하란
■ 서울 - 성북1 선거구 시의원 선거
이번 선거는 사람들의 정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성북구 주민들은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민주노동당에 13.59퍼센트라는 높은 지지를 보냈다. 우리가 월드컵 응원 구호를 바꾼 구호에 맞춰 율동을 할 때였다. 옆에 있던 40대 남자분이 팔짝팔짝 뛰면서 우리를 따라했다. 당원은 아니지만 전교조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분은 “기성 정치는 다 썩었다!”고 분개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찍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운동은 우리에게 활력과 자신감을 주었다. 또, 우리 자신을 변화시켰다. 처음엔 머쓱해 하던 당원들이 선거 마지막엔 다들 훌륭한 연설가가 돼 있었다. 민주노동당을 모르던 학생들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돌아갔다. 한 성신여대 학생은 우리 선거 운동에 참여하기 전에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김민석 선거 운동 자원 봉사를 신청해 둔 상태였다. 선거가 끝난 지금 그 학생은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기성 정당의 가식적 행동과 달리 진보 정당의 주장은 진실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보 정당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여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