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 파업 평가:
아쉽지만 패배는 아니다
〈노동자 연대〉 구독
28일간에 걸친 연세의료원 파업이 8월 6일에 끝났다. 타결 내용은 ‘임금 3퍼센트 인상, 위로금 30만 원 지급, 비정규직 해당자 1백68명 중 39명 정규직화, 간호등급 상향은 4분기 노사협의회에서 협의, 신축 암병동의 다인병실 비율 60퍼센트로 확대’ 등이다.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와 인사상 불이익 금지도 구두 합의했다.
이것은 노조의 애초 요구에 비하면 미흡하다. 무노동 무임금도 적용됐고, 사측은 고소고발·손배도 취하하지 않겠다며 뒤통수를 치고 있다.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은 2005년 4월에 조합원 직선제를 통해 처음으로 ‘민주파’ 집행부를 세웠고 그 기세를 몰아 잇단 승전보를 올렸다. 2005년과 2006년에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은 파업 협박만으로도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노조원도 3천 명에서 3천8백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올해 사측은 악명높은 노조 파괴 전문가를 고용하고 반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결국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은 18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파업 기간인데도 외래 환자 접수를 줄이지 않아 적체 현상을 유도해 환자들로 하여금 파업을 공격하도록 부추겼다.
파업이 3주차에 접어들 무렵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이 노조에 파업 중단 서명지를 전달하는가 하면 때맞춰 〈조선일보〉 등이 파업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때 노조 지도부는 좀더 적극적인 파업 전술을 채택하지 못하고 며칠간의 ‘재택파업’으로 후퇴했다.
7월 30일, ‘재택파업’을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들을 기다린 것은 ‘직장폐쇄’였다. 소수가 병원 로비 재점거를 주장했지만 파업대책본부는 격론 끝에 거점을 연세대 캠퍼스로 옮겼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사측은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회유했고 파업 이탈자가 늘기 시작했다. 결국 지도부는 사측의 부분적 양보안을 수용하며 파업을 끝냈다. 파업이 고비를 맞았을 때 지도부가 좀더 적극적인 전술을 채택하지 못한 점 등은 아쉽다. 한국노총 지도부야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가 실질적이지 않았던 것도 아쉽다.
그러나 18년 만에 무려 28일에 걸쳐 끈질긴 파업을 벌였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노동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애초에 노조의 ‘3대 선결조건’에 대해 논의조차 거부하던 사측이 입장을 바꾼 것도 노동자들의 압력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이번 파업을 ‘노조의 백기투항’인 것처럼 묘사한 것은 왜곡일 뿐이다.
간호부원장도 “파업 끝나니까 부서마다 부서장이 두 명이 됐다. 하나는 병원이 임명한 부서장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 대의원”이라고 파업 이후 달라진 분위기를 인정했다.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하자’, ‘재파업에 들어가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세의료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