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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정상화로 나아가는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이자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은 9월 2일 이틀 간의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마친 뒤 북한이 올해 말까지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핵시설을 불능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 기자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은 연말이라는 시한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계관은 “미국 측이 정치·경제적 보상 조치를 취할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고 말했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의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교도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힐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데 동의했다는 북한측 주장을 부인했다.

힐은 “미북관계는 북한이 비핵화될 때까지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한 단계, 한 단계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가려고 하는 관계”라며, “우리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마지막 단계”로 돼 있는 핵무기 폐기 뒤에나 북미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미국이 비핵화 2단계(신고와 불능화) 이행에 대한 대가로 어떤 정치적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혹

비핵화 2단계(신고와 불능화)는 북한에게는 북미 제네바합의(1994년)를 뛰어넘는 결단이 필요한 조처이다. 제네바합의에서 북한에 요구된 이행 조처는 핵 동결뿐이었고, 핵시설 해체는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설치되는 시점(10년 정도 뒤)으로 미뤄져 있었다.

북한은 핵시설 해체 전에 북미관계 개선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동결을 풀고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북한은 2002년 말에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핵시설 불능화가 실제로 이행된다면,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북한은 핵프로그램을 재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래서, 북한 핵시설이 불능화된다면 미국은 북한의 새로운 핵무기 제조를 막을 수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에 비해 미국 측의 “정치적 보상”은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않고 ‘행동(북한) 대 말(미국)’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지금 미국 정부는 북한이 먼저 행동하기를 기다리겠다는 태도다. 크리스토퍼 힐은 북미관계 정상화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첫째, 북한 핵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결과이다. 따라서, 노움 촘스키가 지적하듯이, “위기를 완화시키고, 더 나아가 어쩌면 종식시킬 수도 있을 방법”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에 나서도록 사실상 재촉하고 있는 위협을 중단하는 것이다.”(임박한 위기: 위협과 기회, 《먼슬리 리뷰》)

그런데 이런 사실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골칫거리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으로 돼 있다.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6자회담 마술이다.

둘째, 1990년대 초반 이래로 북한은 여러 차례 핵과 미사일 포기 의지를 밝혔는데 지금까지 관계 정상화를 내켜하지 않거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온 쪽은 미국이었다. 전이나 지금이나 북미관계 정상화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의지에 달렸다.

지금 부시 정부가 대북 강경 입장에서 후퇴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중장기적 비전을 갖는 새로운 대북 정책을 수립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진보적 한반도 전문가 존 페퍼는 부시 정부 내 “정권 교체” 입장이 퇴조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근본적으로 북한에 별 관심이 없”으며, 더구나 “동북아시아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변화시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John Feffer, “Three Hard Truths”).

또한 존 페퍼는 “미국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만,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기는 더 복잡하다”고 말한다. 미국이 분명한 입장을 가지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부시 정부에 대해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북핵 폐기라는 성과를 원한다는 것뿐이다. 십중팔구 근시안적 시각에서 말이다. 데이비드 생어는 “북한이 올해 안에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는 일정을 지킨다면 부시 정부에게는 중요한 외교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부시의 바람대로 이라크 문제를 만회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장기적 전망 없이 일시적 문제 해소에만 관심을 기울여 온 그동안의 북미 합의들과 최근의 북미 타협 사이에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부시 정부는 떠밀려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의 방향은 부시 정부를 떠미는 힘에 의해 결정될 텐데, 그것은 우리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중동 전선의 성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