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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운동 단일 조직, 어떻게 건설돼야 하는가

최근 학생 운동 단일 조직 건설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월 말에 열린 ‘학생운동포럼’에서 이 주제가 토론된 후, 9월 1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하반기 전학대회에서 한대련을 중심으로 단일 조직 건설 추진 사업 계획이 통과됐다.

현재 이를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세력은 한대련으로 결집한 자주계열 학생들이다. 이들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반미 의식이 대중적으로 고양된 덕분에 운동이 대중화할 잠재력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광범한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진보개혁을 염원하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자라면서 여중생 압사 사건과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의 패권 정책에 불의를 느끼고, IMF 불황과 함께 경험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했다고들 하는데도 여전히 진정한 개혁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모순적 현실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진정한 진보개혁을 바라는 대학생들이 광범하게 단결하자는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진정한 개혁 성취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광범한 단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단결을 이루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학생 운동 내의 여러 단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적·강령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적인 진보개혁적 의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차이점에 대해서는 각자 독자적 견해에 따라 별도로 활동해야 한다.

특히, 자주계열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강령인 ‘민족자주’ 강령을 단일 조직의 강령으로 채택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민족자주’ 강령을 채택하려 한다면, 단일 조직은 자주계열 학생들의 외피로 비춰질 것이다.

실제 운영에서도 다수파가 단일 조직을 자신들의 외피처럼 운영하려는 관성을 버려야 한다. 현재 자주계열은 학생 운동 내에서 오랫동안 다수파의 위치에 있으면서 굳어진 자파 중심적 관성을 여전히 많이 가지고 있다.

가령 최근 단일 조직 건설 논의에서 상당수 자주계열 활동가들은 ‘민족자주’ 강령이 정파를 떠나 누구나 동의하는 강령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운동 내에 있는 다른 경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사실 자주계열 학생 활동가들이 모범으로 여기는 ‘1997년 이전의 한총련’은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다. 자주계열의 학생들이 주도했던 초기 한총련은 형식적으로는 학생 운동의 주요 세력들을 모두 포괄했고, 대학 총학생회의 80퍼센트 이상이 소속된 연합체였다. 그러나 한총련은 내부의 종파적 갈등 때문에 분열을 겪었고, 1997년 이후 현재와 같은 자주계열의 정치조직으로 변모했다.

물론 한총련의 분열은 1996~1997년 김영삼 정부의 극심한 한총련 탄압이 계기가 됐다. 김영삼 정부의 한총련 탄압이 한창일 때, PD 계열 학생들은 한총련을 비판하면서 탈퇴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잘못된 태도는 정부의 한총련 마녀사냥에 힘을 실어준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당시 PD 계열의 종파주의를 부추긴 데에는 다수파였던 자주계열이 한총련을 ‘자주·민주·통일’ 강령과 실천을 구현하는 정치조직처럼 운영하면서, 소수파들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했던 것도 한몫했다.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단일 조직 논의가 결실을 맺으려면,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한 성찰적 평가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대련의 계획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보릿자루

지난 9월 1일 한대련 전학대회에서 한대련은 단일 조직 건설을 위한 하반기 활동 계획으로 ‘한대련 학생회’ 건설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단일 조직을 건설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

단일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단일 조직에 함께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세력들과 함께 모든 것을 열어 놓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대련 학생회’ 건설 계획은 한대련이 모든 학생운동을 대표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대련 전학대회에서 한 대의원은 “한대련 학생회를 표방해 선거를 한다면, 다른 학생운동 조직들과 노선 차이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3백만을 아우른다는 상과 괴리가 생기지는 않는가?” 하고 질문했는데, 한대련의 계획이 가진 모순을 정확히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한대련은 올해 들어 자주계열 단체 성격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이 점은 한대련을 모체로 해 단일 조직을 건설하자는 계획과 모순을 빚을 수 있다.

가령 한대련 전학대회에서 진행된 한국진보연대 가입 안건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모순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가입에 찬성한 대의원들은 주로 한국진보연대가 민중운동을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한국진보연대의 강령과 실천이 한대련의 실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내세웠다. 반면, 가입에 반대한 대의원들은 한국진보연대 가입으로 인해 한대련의 실천이 자주계열의 실천으로 폭이 좁아지고 이로 인해 특정 경향의 운동 단체로 비치는 점을 우려했다.

결과적으로 한대련은 대의원 총 75명 중 48명이 찬성해 한국진보연대 가입을 결정했다. 한국진보연대 가입이 향후 자주계열의 실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한대련을 모체로 단일 조직을 건설한다는 것은 어려움에 봉착할 듯하다.

또, 상설연대체 성격을 갖는 단일 조직이 건설되면 사안별 연대체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특정 쟁점에서 공통점을 기반으로 건설되는 사안별 연대체가 포괄적 쟁점을 다루는 상설연대체보다 종종 더 광범한 대중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단일 조직과 사안별 연대체는 함께 발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자주계열 활동가들은 이 점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사안별 연대체의 ‘난립’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런 모순들은 이들이 단일 조직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와 관련돼 있다. 이들은 단일 조직에 대해 ‘단일 대중조직’과 ‘단일 대표조직’이라는 명칭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그 둘에는 상이한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대중조직’이라는 표현에는 더 광범한 운동과 조직을 강조하는 함의가 담겨 있는 반면, ‘대표조직’이라는 표현 속에는 “분산된 지도력을 단일화”한다는 함의가 강조돼 있다.

문제는 두 가지 함의를 하나의 조직에서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 광범한 운동을 포괄한다면, 그 운동 내에는 당연히 다양한 방향의 지도력이 형성될 것이다. 거꾸로 지도력을 단일화한다면, 나머지 방향의 지도력에 영향을 받는 다양한 운동을 포괄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 속에서는 이 두 가지 경향이 어느 것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문턱을 높인 것 때문에 모든 운동을 포괄하지는 못한 채로 운동의 일부만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독자적 정치 조직을 구축하지 않은 다수파들은 현실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그 조직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지배적이 된 조건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정치 강령을 단일 조직에서 구현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조차도 원만하게 구현하기 어렵고, 단일 조직 내의 다른 경향과 불화와 반목만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정치 강령을 가진 세력들은 자신들만의 정치 조직을 독자적으로 건설해 운동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의 올바름을 입증 받으려 해야 한다. 반면 광범한 운동을 포괄할 조직은 서로 다른 정치 강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의 공통점에 기초를 두고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운동 단일 조직이 광범한 연대와 단결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면, 후자와 같은 성격의 조직으로 건설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