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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징계 위협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징계 위협을 받고 있다

김태훈

김대중 정부는 ‘국립대학 발전 계획’을 수립하면서 “국립대학 체제의 효율성 증진을 통한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립대학 발전 계획’의 최초 제목이 ‘국립대학 구조조정 계획’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박병덕 전북대 교수는 이에 대해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이름만 발전 계획이라고 바꿨을 뿐 … 결국 국립대학에 시장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립대학의 대표격인 서울대에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은 1998년이었다.

시장 개혁의 결과

결과는 참혹했다. 시장 개혁은 기초 학문을 파괴했다. BK21 지원금의 90퍼센트가 이공계에 집중됐다. 인문계는 아예 수혜 대상에서 배제됐다.

정부는 “경쟁력 없는” 학과 교수들을 빼내어 “경쟁력 있는” 학과로 이적시켰다. 작년에 물리교육학과 교수는 단 1명이었다. 나머지 교수들이 모두 자연대로 옮긴 것이다. 그 결과 개설 강좌가 31개에서 12개로 줄었고, 그마저 절반은 시간 강사로 대체됐다. 혼자서 무리한 수업을 강행하던 그 교수는 과로로 쓰러졌다. 분노한 학생들은 정부를 상대로 수업권을 침해한 것에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교육부와 서울대학교는 모집단위 광역화를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다각적으로 재발견하고 관련 전공 영역을 탐색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학생들이 인기 학과에 몰릴 것을 알면서도 교수와 기자재 확충, 강의실 증축 등의 재원 마련을 하지 않았다. 성적순으로 전공 인원을 제한했다. 지난해 서울대 총학생회장 장종오 씨는 교육부의 모집단위 광역화 정책을 이렇게 비판했다. “1·2학년 동안 여러 학문을 두루 공부하며 다양한 전공 탐색의 기회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인기 전공에 진입하기 위해 특정 교과목 재수강을 거듭한다. 보다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해서 학과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 교과목만 이수한 후, 학점을 잘 준다고 소문난 교양 과목을 쫓아다니기 십상이다.”경쟁 강화가 학업 능력을 높인 것도 아니다. “비인기 학과는 다른 전공에 떨어진 학생을 2차 지원에서 받기 위해 아예 기준 교과목을 폐지해 버려, 이 전공에 진입하는 학생들은 기본적인 전공에 대한 이해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서울대는 올해부터 아예 노골적으로 이공계 신입생들을 상대로 ‘우열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비인간적 입시 제도의 상징인 ‘우열반’이 21세기에 부활한 것이다.

시장 개혁 이후 교육의 질은 도리어 떨어졌다. 서울대 전임 교원 수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 10명이 줄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학생 정원은 12.7퍼센트 늘어났다. 그 결과, 교수 1인당 학생 비율이 21.9명으로 10년 전의 20.8명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런 판국에 서울대는 등록금을 계속 인상했다. 올해 신입생 등록금은 12.5퍼센트가 올라, 이공계 등록금은 2백만 원에 육박한다. 계절학기 등록금은 60∼1백9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내년부터는 등록금 책정이 아예 자율화된다.

저항

3월 28일,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 반대, 모집단위 광역화 철폐”를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 앞서 열린 비상학생총회에 무려 1천7백여 명이 모일 정도로 학생들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학생들이 점거하는 도중 우연히 발견한 문서에는 서울대 총장 이기준의 비리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이기준은 한 해 판공비를 무려 4억5천만 원이나 썼다. 심지어 이발비와 승용차 인테리어 꾸미는 데도 학교 돈을 사용했다. 명절 때마다 정부 관료들에게 선물을 보낸 사실도 밝혀졌다. 그 가운데에는 국가정보원장도 포함돼 있었다. 이기준은 LG 계열사 사외이사로 일하면서 연구비 1억4천만 원을 받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구조조정을 앞장서 추진한 교육부의 심복” 퇴진 투쟁을 전개했다. 결국 이기준은 사퇴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학생들이 시장 개혁에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면 본보기가 필요했다. 학교측은 총학생회 간부 4명을 징계했다.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2차 점거에 참여한 2백여 명은 형사 고발됐다. 반면에 이기준은 학생들이 여름 농활을 떠나는 분위기를 틈타, 특별 채용 형식으로 평교수로 복귀했다.

시장 개혁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학본부 교육정책 불신임 투표에 1만 79명이 참여했다. 96퍼센트가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비상학생총회가 성사된 것도 6년 만의 일이다.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 운동에 1만 1천1백54명이 동참했다. 사범대 신입생들은 집단 휴학원을 제출하고 전공 수업 참석을 거부했다.

징계 문제에 대한 현 대학 본부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다 보니, 상당수 학생들은 차기 총장에 내정된 정운찬 교수에게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정운찬이 민교협 소속이라 보니 그가 적어도 신자유주의자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꽤 퍼져 있다.

그러나 정운찬은 “노동 시장은 좀 더 유연해져야” 하며 “구조 개혁을 하려면 한 순간의 고통은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시장주의자다. 그는 재경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을 맡아 은행 구조조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의 징계도 지지했다. 점거 농성에 대해 “학생들의 의사 표현 방식은 크게 잘못된 것”이고, “명백히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른 조치를 통해 학내 질서가 유지돼야 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 정운찬은 이기준의 시장 개혁을 그대로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그 동안 시장 개혁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과대별로 시차를 두고 야금야금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모집단위 광역화는 5년여에 걸쳐 자연대, 인문대, 나머지 단과대 순으로 도입됐다.

따라서 시장 개혁에 반대하는 투쟁이 개별 단과대 투쟁으로 파편화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사범대 학생들의 투쟁에 인문대·사회대·공대 학생들이 무관심해선 안 된다. 교육에 시장 논리를 도입하는 것은 대다수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전체 학생들이 함께하는 공동 투쟁을 통해서만 시장 개혁을 좌절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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