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과 국가보안법:
대북 경각심 위해 국보법 처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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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의 역겨운 이중잣대를 보여 줬다.
노무현이 만수대 의사당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는 문구를 쓴 것은 “찬양·고무”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나전칠기 병풍과 DVD를 선물하고 송이버섯을 받아 온 것은 “편의제공·금품수수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공동선언(‘10.4 선언’)에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담겨 있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와 천영세 의원이 “법률·제도적 정비가 대북 투자 관련에 치중한 것 같다”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입장을 묻자, 노무현은 “정상회담에서 국가보안법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우익들은 ‘10·4 선언’ 중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조항을 두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내준 거나 다름 없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북한은 규약이나 법이 아니라 김 위원장의 뜻에 따라 통치되는 곳”이므로 “국보법과 노동당 규약을 같이 없애면 결과는 남한만 자유민주 체제 방어 수단이 없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며 상호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이중잣대
한편, 2001년 만경대를 방문해서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달성하자”고 쓴 강정구 교수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고통받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9일 열린 강정구 교수 2심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정상회담 이후 젊은이들의 대북 경각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피고를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며 강정구 교수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그래서 지난 13일에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선포대회”에서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장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그 점을 전면 부정하는 법”이라고 규탄했다.
오종렬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대표는 “법적·제도적 정비를 하겠다는 합의문이 나왔다 해서 [진보진영이] 두 손 놓고 구경만 해도 되려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얘기다.
진보진영은 정상회담이 낳은 효과를 이용하면서도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부 모두한테서 독립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악법은 폐지밖에 답이 없다
‘일심회’ 등 국가보안법 사건을 도맡다시피 하며 훌륭히 방어해 온 김승교 변호사는 〈내일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 국가보안법 폐지는 전제조건”이라고 옳게 지적했다.
그런데, 김승교 변호사가 “국보법 폐지가 안 될 경우 차선책으로 국가보안법 2조 ‘반국가단체’ 정의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은 냉전 악법인 동시에 사상과 견해 표명의 자유를 억누르는 반민주 악법이기 때문이다.
김승교 변호사는 2조를 개정하면 “법원에서도 북한과 관련된 국보법 위반자들에 대해 처벌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곧 국보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북한과는 상관없는 법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국제사회주의자들(IS)처럼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좌파들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았다는 사실을 제쳐두더라도, 2조를 개정한다고 친북 좌파가 탄압에서 자유로워질지도 미지수다.
북한을 핑계 삼지 않고도 “국가 변란을 선전 선동하는 행위”(국가보안법 제7조)라며 체제에 저항하는 투사들을 얼마든지 탄압할 수 있다. 강정구 교수 재판에서도 검사는 “강정구 교수의 친북적 주장 그 자체보다도 그런 주장이 맥아더 동상 철거 운동 등 한총련의 폭력 투쟁에 논거를 제공하고 그 운동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의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한다는 원칙을 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