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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1학년이었던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싸늘한 시체가 됐다. 당시 학생이던 나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며칠 뒤에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 씨가 의문사를 당했고 시체마저 탈취됐다.

이런 폭압적 탄압에 항거하는 분신이 이어졌다. 모두 12명의 학생들과 청년들이 목숨을 던져 정부에 항의했다.

정부는 운동 세력을 비방하고 도덕성을 깎아내리려 혈안이 돼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건이 바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사회부장을 맡고 있던 김기설 씨가 분신하자 한 시간도 못 돼 당시 검찰국장 정구영은 분신에 조직적 배후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5월 투쟁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이 사건을 날조하고 조작했다. 검찰은 강경대 열사의 장례식 날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 발표했고, 강기훈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 열사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다음날이었다. 그 해 5월 27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의 가장 커다란 제목은 “강기훈 씨 자살방조 영장”이었고, 그 아래 “여대생 사망 새 불씨로”라는 아주 작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강기훈 씨는 정부기관인 국과수의 ‘대필’ 판정 하나로 무려 3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고, 16년 동안 커다란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이 사건을 지휘한 전 대법관 강신욱은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건을 10여 년이 지나 문제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떠들고 있다. 강기훈 씨의 말처럼 현재 검찰 고위직이나 변호사로 뻔뻔하게 살고 있는, “당시 짜맞추기 수사를 했던 검사들의 과오도 모두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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