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의 '메스를 들이대며':
진보정당만이 한국정치의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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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대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는 국회의원들이 하루걸러 1백 명씩 검찰청에 찾아가 BBK의 공정 수사를 촉구하는 것이 전부인 듯하다. 도장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계약서가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지가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판에 ‘정책 선거’가 중요하다는 말은 순진한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현 상황을 정치의 실종, 정책 선거 부재라고 진단하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듯하다. 심지어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들조차 정책 선거의 실종을 말한다. 문제는 그 이유에 대한 진단과 이를 극복할 전망이다.
이회창 씨의 로고송은 “10년을 기다려 온 이회창”이다. 이쯤 되면 코미디를 넘어 비극에 가깝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많은 사람들이 절망한다. 김근태는 “국민들이 노망이 들었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정말로 국민들의 정치적 무감각과 무지가 문제일까?
이번 대선에서 정치가 사라진 듯이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 노망’이 아니다. 그 원인은 바로 노무현 정권 자신, 즉 진보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 자유주의 세력의 10년 집권이 그 원인이다. 민중에게 ‘진보’나 보수나 자신의 삶이 어려워진 것은 마찬가지인데 정치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정치나 정책은 2007년 오늘 한국에서 민중에게는 말장난으로 보일 뿐이다. 정치의 실종은 진보를 가장했던 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몰락의 결과일 뿐이다.
침소봉대
그런데 이러한 김근태의 절망이 자유주의 세력에 그치지 않고 상당수의 진보적 활동가들에게도 전염돼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요즈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물론 민주노동당 일부 지도부가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주요 슬로건으로 내세우려 했던 것은 틀렸다. 필자 또한 핵심정책으로서도 또 통일방안으로서도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민주노동당의 핵심 정책이 아니며 정책의 일부일 뿐이다.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를 특정 정파의 정당과 후보로 치부하는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침소봉대일 뿐이다.
진보적 활동가들 중 일부는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대한 과도한 비판을 앞세워 민주노동당을 폄하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현재처럼 정치적 공백이 클 때 더욱 문제가 된다.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으로 인한 정치적 공백이다. 이 공백을 기존의 자유주의 세력보다는 진보적으로 보이는 문국현 씨가 일부 메웠고 나머지 부분을 이명박과 이회창이 메우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정치 지형이다. 진보정당이 대중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대안정당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며 다른 모든 나라들의 진보정당 역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약진하지 못하고 지지율이 낮은 주된 이유를 객관적인 대중의 역사적 경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주로 운동 자체의 한계에서 찾으려 들게 되면 그 결과는, 의도가 어떻든 간에, 대중을 보수정당에게 내모는 꼴이 될 것이다. ‘제 스스로를 모욕한 사람만이 타인에게 모욕당할 수 있다’는 말은 사회운동에도 해당된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은 지금 자신을 모욕할 때가 아니다.
전환점
또 최근에는 비판적 지지론도 진화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정동영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자고 하기에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너무 크기 때문에 비판적 지지론이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나고 있다. 진보적으로 보이는 듯한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말하기도 하고, 사회운동의 과제가 극우세력 집권 저지와 진보정당 지지 두 가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 문제에 대한 과도한 비판도 얼굴을 바꾼 ‘비지론’의 또 다른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사는 지금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때가 아님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무상의료 정착 과정의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메이데이의 역사를 말할 때마다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쟁취 투쟁을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1백여 년 전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전투적인 노동운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 무상의료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는 미국 하나다. 그 이유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노동자정당을 세우는 것에 실패했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보수정당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무상의료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국은 2차대전 후 노동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면서 무상의료가 도입됐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남부유럽에서 무상의료가 도입된 것도 유럽 최후의 민주화라고 일컬어지는 1970년대 중반 노동자정당 집권 이후다.
이러한 역사적 선택의 결과 미국은 개인파산의 50퍼센트가 의료비 때문인 황당한 나라가 됐고, 유럽은 가장 빈국이더라도 치료비 걱정은 없는 사회가 됐다. 이런 효과는 의료만이 아니라 대선에서 다뤄져야 할 모든 정책들, 즉 비정규직이나 고용, 주택, 교육, 인권 등 모든 문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진보정당의 성장과 집권이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사회적 문제 해결의 유의미한 전환점이라는 것이 모든 나라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다.
현재 대통령선거에서 정치 실종을 극복하고 정책 선거를 복원하는 길은 보수정당과 완전히 절연한 진보정당이 자리를 잡는 것뿐이다.
따라서 지금 진보를 원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할 일은 대통령선거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한미FTA 저지, 반전평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절망은 보수정당과 보수정치인들의 몫이다. 사회운동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진보정당을 온전히 지지하는 것이다. 지금 절망만이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만이 희망이고 그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