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조종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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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2일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첫 파업을 단행했다. 이 파업은 한 조종사의 말처럼 31년 항공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조종사들의 첫 파업은 이미 지난 5월 31일부터 예고돼 있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자신의 불만을 조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그 동안 대한항공에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리직 및 정비직의 직원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산하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이 노조는 친사용자적 노조였다. 그래서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별도의 노조를 만들었는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조종사들이 5월 31일 민주노총 총력 투쟁 당시 파업에 돌입할 태세를 보이자 회사는 한발 물러섰고 결정적으로 10월 22일 파업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 7일 서울 행정법원이 대한항공 노조가 낸
조종사들의 파업 의지는 굉장히 높았다. 파업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 1천1백81명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17시간만에 회사를 굴복시켰다. 비행수당 지급 최저시간 한도를 60시간에서 75시간으로 늘리고 비행수당을 시간당 1만2천 원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또, 편승시간을 포함해 노동시간을 국제선은 월 120시간
억대 연봉?
조종사 파업이 벌어지자 조종사가 노동자냐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정부와 기성 언론은 조종사들이
그러나, 조종사들이 억대의 연봉을 받는다는 주장은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분노하며 말했다.
대한항공사의 억대 연봉 운운은 연봉 계산 방식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임금명세서까지 보여주며 명예소송을 걸고 싶다고할 정도였다.
외국 항공사와 비교해 봐도 대한항공사 조종사 임금은 결코 높지 않다. 외국항공사는 전체 매출액의 25%를 임금으로 지불하는데 비해, 대한항공사는 연 매출액 5조 원 가운데 11%만을 임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게다가
조종사들이 다른 업종의 노동자보다 임금을 좀더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조종사가 노동자가 아님을 뜻하는 게 아니다. 임금 수준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은 조야한 접근법이다. 계급은 생산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즉 생산 과정과 생산물에 대한 통제 여부에 따라 나뉜다.
조종사는 비행 스케쥴이나 근무 시간 등에서 회사측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또, 조종사가 받는 임금은 그들이 생산한 가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항공은 단 17시간의 조종사 파업으로 2백억 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이것은 대한항공사 수익의 원천이 조종사들의 노동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 조종사는
조종사는 분명 노동자다. 임금 인상 요구는 완전히 정당했다.
누가 안전을 위협하는가?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비행시간 75시간 단축 요구였다. 조종사들은 한결같이 안전 운항을 위해 비행 시간이 대폭 단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항공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항공사는 조종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연간 250명 가량의 신규 조종사가 필요하지만, 자체 교육과 공군전역자 등을 통해 확보되는 인력은 150명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장시간 근무에 시달린다. 부기장인 한 조종사 노동자는
또다른 노동자도 이렇게 말했다.
대한항공사는 55세가 정년퇴임 나이인데 60세까지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는 등의 편법으로 노동력 부족을 메우고 있다. 퇴임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는 비율이 무려 95%에 이른다.
잦은 비행 계획 변경과 장시간 근무는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한 조종사는 말한다.
조종사들은 회사측의 압력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서도 회항하지 못하고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성재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조종사 파업은 이윤이 아니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파업이었다.
계급적 자각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은 국내 첫 조종사 파업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조종사 파업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선 낯선 게 아니다. 지난 9월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1만여 명이 파업을 통해 21.5%의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지난 1998년 에어프랑스 노동자들은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무기한 파업에 돌입해 정부의 민영화 계획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세계의 조종사들이 벌여 온 전투적 파업의 맥을 잇게 됐다.
이번 파업을 통해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일부라는 분명한 자각을 하게 됐다. 한 노동자는
또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조종사는 남한 노동자 계급 운동의 항구적 일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