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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을 거부하는 이유

지난주 북한은 개성공단 경협사무소에서 남측 인력 철수를 요구하고, 서해에서 미사일 시험을 실시하고, “잿더미” 발언을 하는 ‘연타’를 날렸다. 급기야 이번주 초 〈노동신문〉은 이명박을 직접 거론한 비난을 쏟아냈다.

사실, 이런 북한의 반발은 오래 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북한이 ‘연타’를 날리기 전에는 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의 ‘도발’이 이미 꽤 누적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사훈련은 남한 측이 먼저 했다. 3월 초에 실시된 ‘키 리졸브’ 한미연합군사훈련에는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이지스함까지 동원됐다.

미사일방어체제(MD)와 핵확산금지조약(PSI) 참가 여부도 북한이 주목하는 쟁점이다. 미국의 군사전문지인 〈디펜스 뉴스〉(3월 17일)는 한국이 미군에게 요격미사일 발사 장소를 제공하거나 MD 시설의 한국 배치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방식의 MD 참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월 27일 유엔의 북한인권보고관 임기 연장 결의안에 남한 정부가 찬성표를 던진 것도 북한을 자극했을 것이다.

합참의장 김태영의 “선제타격론”이나 통일부 장관 김하중의 “북핵과 개성공단 확대 연계론”말고도,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인내심을 바닥낸 일들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이명박은 취임 첫 날부터 “북이 핵을 포기해야 남북 협력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며 선 핵폐기 입장을 천명했다. 이런 입장은 남북 정상회담 합의 사항들도, 그 때 이래 견지돼 온 정경분리 원칙도 무시한 것이다.

이명박의 ‘비핵 개방 3000’에는 근본적 맹점이 있다. 비핵화와 개방을 전제로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천 달러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비핵화를 이룰 것인지는 건너뛰고 있다.

북미 간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남한 정부는 가만히 있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실제로, 이명박은 지난 1월 중순 북한으로부터 회동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3월 5일치)

교착

그런데 문제는 6자회담의 교착 국면이 길어지면서 북핵 문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도 대세를 이루던 낙관론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고, 뉴욕필의 평양 공연도 이 흐름을 바꿔놓지 못했다. 이명박이 쉽게 전제한 부분(비핵화)이 사실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명박만이 몰랐던 듯하지만 말이다.

6자회담의 현 국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은 이미 지난해 11월에 핵 신고(2단계)를 이행했다는 것이고 미국은 신고를 받은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괴한 일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와 핵 협력 의혹을 핵 신고에 반드시 담아야 한다는 미국의 고집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UEP와 시리아 핵확산 의혹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서로 다른 입장을 나란히 병기하는 절충안이 3월 중순에 열린 제네바회담에서 제시됐지만,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고 내역은 핵폐기의 기준이 되므로 중요한데다, 과거 행적에 대해 조금이라도 시인했다가 의혹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 문제에서 모두 미국은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UEP를 추구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러시아로부터 알루미늄관을 대량 수입한 것을 들이대 왔다. 그러나 미국측 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은 올해 초 앰허스트 대학교 강연에서 “우리는 그 알루미늄관이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고 시인했다.

시리아와 핵 협력설은 근거가 더 빈약하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조차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을 계속 부인해 왔다. 유명한 탐사 전문기자인 시모어 허시도 〈뉴요커〉 2월 11일치에 실린 ‘어둠 속의 공습 ―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폭격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기사에서 이 의혹이 근거 없다는 것을 낱낱이 밝혔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는 의혹을 거둬들이지 않는다. 특히 UEP 문제는 제2차 북핵위기와 제네바합의 파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가름하기 때문에 양측 모두에게 물러설 수 없는 쟁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시 정부가 지금 해명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당면한 관심은 꼼수를 써서라도 일단 2단계를 끝내고 임기 내에 3단계(핵폐기)로 진입하는 것인 듯하다. 임기 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의혹을 남겨둔 채 신고의 형식 절차만 마무리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미 북한은 “만일 미국이 계속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보려고 우기면서 핵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다면 지금까지 겨우 추진되어 온 핵시설 무력화[불능화]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다” 하고 경고했다. 불능화는 이미 꽤 진척됐지만 1년이면 재가동할 수 있다.

북한의 경고대로 핵시설 불능화 과정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사태는 원점을 향해 움직이며 교착 국면이 늘어질 수 있다. 클린턴 임기 말에 그랬듯이 부시도 시간 부족을 탓하며 권좌에서 물러날 수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사태는 나아질까? 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1994년 6월 북한 폭격을 잠시 고려했던 클린턴 부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오바마도 최근 상원 외교위원회 발언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켜내기 위해 단호해야 할 뿐 아니라 양보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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