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졸업자 명단은 예비 실업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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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학원가. 점심 때가 되자 골목마다 빽빽이 들어선 임용고시·공무원 시험·행정고시·각종 자격증 학원들에서 추리닝 차림의 수험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원 앞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남학생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조수진 씨도 이 대열에 속한 한 사람으로, 영어 교사가 되려고 2년째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엔 정 할 거 없으면 임용고시라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직 과정을 신청했는데, 나중엔 기업체 취직할 자신이 없어졌어요. 여자는 월급도 작고 비정규직에다가 … 교사만 한 직업이 없겠다 싶었죠.”
수진 씨는 이미 한 차례 시험에 떨어졌는데, 수십 대 일의 경쟁률 때문에 재수는 기본이고 3~4수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학원에서 한 수업에 2백 명이 콩나물시루처럼 빡빡하게 듣는데 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치열해요. 지방에서 새벽 첫 차 타고 올라와서 수업 듣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해서 붙는단 보장이 없잖아요. 상대평가고 경쟁이니까요. 그걸 깨달을 때 마음이 불안해져요. 이 공부를 계속 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이거 아니면 뭘 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친한 친구 한 명은 통역대학원에 갔어요. 거기 가려고 3∼4년씩 준비하기도 한다던데 막상 졸업해도 다 취업이 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콩나물시루
그의 말처럼 지금은 “졸업자 명단이 곧 예비 실업자 명단”이다. 청년취업자 수는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어느덧 청년실업 2백만 시대다.
취업준비생들은 학벌, 학점, 영어 능력 같은 ‘기초 3종’ 외에도 아르바이트,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 경력 같은 ‘취업 5종 세트’까지 갖추느라 쉴 틈이 없다. 여성들은 여기에 성형수술이 추가된다.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한 유명 인터넷 카페에는 치아 교정 정보 게시판이 주요 메뉴로 개설돼 있다. 면접 때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사도 ‘고시’처럼 문이 좁아진 상황에서, 졸업을 늦추는 ‘대학 5학년생’이 부쩍 늘었고 대학원을 도피처 삼는 이들도 많다.
엄습하는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심지어 20대 구직자 절반이 ‘취업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있다.
이명박은 이런 젊은이들에게 “본인이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눈높이를 낮추라”고 충고한다. 개인의 능력·노력 부족을 탓하며 저임금의 고되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만족하란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 알바를 하거나 ‘88만 원’ 월급을 감수하고 있다. 수진 씨도 이번 시험에 합격 못하면 기간제 교사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 때 대출받은 학자금의 원금 상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시원 총무 아르바이트로는 학원비를 대기도 버겁다. 어렵게 들어온 대학에 수천만 원 등록금을 내고 4년을 달려 온 결과, 취업도 하기 전에 빚더미에 앉은 현실이 원망스럽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