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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대상 성범죄 ─ 처벌 강화가 해결책일까?

혜진·예슬의 비극적 죽음 이후 주류 정치인들과 언론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 처벌 강화를 목청 높여 외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회가 열리면 곧 ‘혜진·예슬법’(아동 성폭행 살해자를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고, 성폭력 범죄자를 집행 유예 대상에서 제외하고 가석방도 불허하는)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주류 언론은 앞다퉈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실시하는 ‘강력한’ 아동 성범죄 대책을 소개했다.

‘마사지걸 선택하는 인생의 지혜’나 얘기하던 이명박과, 여기자를 성추행·성희롱한 최연희·정몽준 등이 있는 한나라당이 성범죄를 일소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자사 웹사이트 곳곳에 반쯤 벗은 여성 사진들을 늘어놓는 주류 언론들이 성범죄 강경 대처를 주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류 정치인들과 언론이 내놓은 대책은 한결같이 ‘예방책’과는 거리가 멀다. 온갖 종류의 아동 대상 성범죄 대책을 시행하는 미국을 보자. 미국은 13세 미만 아동 성폭행의 최저 형량이 한국(징역 5년)보다 훨씬 높고(44개 주에서 징역 25년), 아동 성폭행 살인은 사형에 처해진다. 모든 성범죄자의 유전자 정보가 등록되고, 성범죄자 신상공개가 모든 주에서 시행중이다. 미국의 신상공개제는 한국보다 더 강도가 높아, 성범죄 전력자의 사진과 자세한 주소가 지역 신문에 게재된다. 어떤 주들에서는 상습 성범죄자를 거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 때문에 미국의 아동 대상 성범죄가 감소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난해 5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신상공개제를 도입한 매건법을 처음 시행한 뉴저지주가 진행중인 연구 내용을 따 “법 시행으로 재범률이 낮아졌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여전히, 미국은 성범죄와 살인·폭행 등 폭력 범죄 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강력한 예방?

따라서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형량을 높이고 사후 감시 강화 등의 조처를 통해 아동 대상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은 공상일 뿐이다. 게다가 ‘혜진·예슬법’ 제정을 “전시 효과”라고 비판한 서울고법 판사 설민수가 지적했듯이, 이미 아동 성폭행 살인이나 “대부분의 유사범죄는 사형이 가능하고 최소 무기형 정도를 선고하고 있”다.

학교 앞이나 놀이터 부근에 CCTV를 설치하는 것도 예방책과 거리가 멀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주류 언론 보도처럼 낯선 사람들에 의해 주로 일어나지 않는다. 미 법무부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12살 이하 어린이 성폭행범의 96퍼센트가 가족과 친지, 부모의 친구나 친구의 부모 등이었다.(〈한겨레21〉 2008년 4월 15일치)

학교나 놀이터, 동네 공터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낯선 남자에 대한 공포는 아동 납치를 사실상 성범죄와 거의 직결시키는 최근 주류 언론의 보도 행태 때문에 더욱 고조된다. 그러나 아동 납치 사건의 사유는 다양하며, ‘소아기호증’의 남자보다 절망적인 가난과 빚에 쫓기는 남녀가 몸값을 노리고 아이를 납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아동 대상 성범죄의 대부분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것은 성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에도 진실이다)을 생각하면, 주류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제시하는 다양한 해법들이 모두 성범죄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아동을 겨냥한 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단순히 ‘소아기호증’을 지닌 개인들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영국 내무부 보고서를 보면, 많은 아동 강간범과 성추행범들은 성인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에 집착한다. 그리고, 국내외 많은 연구는 아동 성범죄자 중 많은 수가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고 보고한다.

분노와 좌절, 또는 억눌린 성적 욕구를 연약한 아이들에게 분출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사람들의 내면이 끔찍하게 뒤틀리게 되는 원인 - 가난과 불평등, 억압과 소외 -은 고스란히 놔둔 채 처벌만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끔찍한 아동 대상 성범죄를 끝장내려면 불평등과 억압·소외를 낳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