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인플루엔자 ? 흑사병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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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가 무서운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2일 전북 김제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만 해도 저절로 사라질 줄로만 알았던 조류 인플루엔자는 기온이 20도를 오르내리는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철새’를 범인으로 지목해 책임을 회피한 정부가 이번에는 ‘방역망을 뚫고 오리를 유통시킨’ 농민들을 속죄양 삼고 있다.
그러나 사료 공장 등 조류 인플루엔자의 주요 전염 경로를 일상적으로 감시·감독하는 기업 ‘규제’는 풀면서 오로지 농민들의 자진 신고에만 의존하는 방역 체계는 이처럼 쉽게 뚫리기 마련이다. 미국의 광우병 관리 체계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자진 신고하는 즉시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정부 보상금과, 담보를 요구하는 대출 ‘지원’을 믿고 최소한 몇 달 동안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정책이 사실상 이런 재앙을 부추겨 온 셈이다. 이전 정부들과 이명박의 친기업·수익성 논리가 낳은 결과인 것이다.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는 지난해까지 유행하던 것과는 달리 따뜻한 날씨에도 전염력이 전혀 줄지 않고,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는 변종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백79명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그 중 2백39명이 목숨을 잃었다. 풍토병으로 자리잡아 전염 기회가 많아진 동남아시아 지역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조류 인플루엔자 연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 왕(Yu Wang) 박사가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 간 감염’이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한 논문이 권위있는 의학 잡지인 《랜싯》 4월호에 실렸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며 인구의 3분의 1을 사라지게 만든 중세 시대와 달리 지금 우리는 그런 재앙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필요한 조처들이 전혀 혹은 거의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인체 전염의 초기 유행 단계에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인구의 3퍼센트 분량만 확보하고 있다. 그나마 비용을 치를 능력이 없는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에는 아예 공급도 안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