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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건국 60년:
제국주의의 경비견 이스라엘

지난 호에 예고한 대로 이스라엘 건국 역사를 다룬 글을 싣는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대안 문제는 관련기사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읽기 바란다.

이스라엘 국가는 60년 전인 1948년에 1백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기 고향에서 내쫓는 만행을 저지른 후에 탄생했다. 아랍에서 이 만행은 ‘나크바’[재앙]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념인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시작됐다. 시온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럽 거주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에 대응해 등장했다.

시온주의는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면 유대인 억압이 해결될 거라고 주장했다.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 빌붙는 방식으로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시온주의가 유럽 제국주의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했다.

시온주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정부는 유대인 이주자들이 영국의 중동 식민지 지배를 도와줄 거라는 시온주의 지도자들의 말을 받아들여 1917년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하면서 1930년대 중반에는 거의 45만 명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다.

만행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장악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한 것은 UN 총회였다. UN 총회는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나란히 건설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이 결의문을 근거로 자신들이 이미 준비해 왔던 팔레스타인 공격 계획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1947~48년 사이 시온주의 민병대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 예컨대, 1947년 12월 18일 갈릴리의 키샤스 마을에서 유대인 민병대들은 한밤중에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폭탄을 던져 15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했다. 또, 1948년 4월 데이르 야신에서는 9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그 중 3분의 1 이상이 영아였다.

이런 무차별 학살 뒤에는 냉혹한 계산이 있었다. 학살자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런 대량 학살 소식을 듣고 공포에 질려 자기 마을에서 도망치기를 바랐다.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선언한 후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과 축출 작업은 계속됐다. 5월 22일 탄투라에서 2백3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살해됐다.

미국과 소련 같은 초강대국들이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지원했고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 후 그것을 즉각 인정했다.

이런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숫자는 85만 명으로 늘었다. 난민들은 땡전 한 푼 없었고, 대량 학살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서안, 가자지구의 난민촌에 정착했다. 난민촌의 상황은 끔찍했다.

1948년 ‘재앙’은 당시 중동 지역 정세를 고려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시온주의 운동을 지원한 이유는 당시 성장하고 있던 중동 민중의 반제국주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국가는 중동에서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아랍 민중들을 억누르고 물어뜯는 ‘경비견’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를 읽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