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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왜 교과서에만 있을까?

촛불집회에서 많은 청소년들은 “정부는 왜 교과서에 나온 대로, 학교에서 가르친 대로 민주주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가?”라며 성토했다. 이명박은 시위 참가자들이 즐겨 부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 가사와는 정말이지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미친 소 수입을 위해 국민의 뜻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군사 독재 정권처럼 헌법에도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래 쌓아온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를 무로 돌리려는 것이다. 대운하 건설, 의료보험 민영화 등의 문제에서도 전 국민의 반대를 무릅쓴 이명박 불도저의 막가파식 폭주는 계속되고 있다.

비록 대선·총선 사상 최대의 기권율 속에서 소수 유권자의 지지만 받고 당선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들이 이토록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를 수 있는 것이냐는 극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비민주적인 정부에 반대해 이미 5월 초에 1백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이명박 탄핵 촉구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농림부 장관 정운천 해임건의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국회의원들이 이명박 탄핵을 발의할 리는 없다.

우리에게는 몇 년에 한 번 2∼3분간 투표소에 가는 것 외에는 정치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선거 기간 동안에는 그럴듯한 말을 잔뜩 늘어놓지만, 일단 선출만 되고 나면 자신을 뽑아 준 대중의 뜻을 거스르기 일쑤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을 뽑아 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을 가진 소수 기득권 세력의 말에 귀 기울인다. 어마어마한 재산과 자본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지 결정하는 재벌들, 조중동 같은 거대 언론 사주들,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 장성과 경찰 간부들, 고위 공직자와 판·검사들 등이야말로 의회와 정부를 ‘통제’하고 사회의 숱한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는 장본인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제는커녕 투표로 선출할 수도 없다.

3조 원을 가진 국회의원 정몽준이나, CEO 출신으로 공식 신고한 재산만 3백50억 원에 이르는 이명박 등 상당수 정치인들 자신이 바로 이런 지배계급의 일원이기도 하다. 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지배계급은 정치자금과 로비, 인맥 등으로 정치인들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다.

권력층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추진하는 정책들은 많은 경우 소수 권력층과 강부자, 재벌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미친 소 수입은 재벌들에 이익을 주는 한미FTA를 위한 것이다. 또, 의료보험 민영화는 삼성생명·AIG 등 거대 민간 보험사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안겨줄 것이다. 대중이 이런 정책에 반대하자 이명박은 집회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까지 억압하며 대중의 분노를 억누르려 하고 있다.

이런 점은 민주화 운동 출신이었던 노무현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은 “미국에게 할 말은 하겠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하더니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를 강행했고, 비정규직 9백만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집시법, 국가보안법을 통해 탄압했다.

만약 선출된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정말로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총동원해 이를 강제로 무너뜨릴 준비가 돼 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사장과 우익들, 군부는 차베스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자본을 회수하고, 미디어를 통해 공세를 퍼붓고,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1971년 칠레에서는 민중 운동의 힘으로 당선된 진보적 아옌데 정권이 기업주들의 공세와 미국 CIA와 손잡은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진 바 있다.

국민들 목소리에는 완전히 귀를 틀어막은 이명박 같은 정치인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거리 시위와 같은 민중의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우리의 요구를 내걸고 집회·행진·파업을 하고 투쟁의 방향을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그 자체이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얻어낼 수 있는 씨앗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에도 도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의 부를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다수가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자본주의 국가 대신, 평범한 노동자·서민들이 언제든지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소환·통제할 수 있고 민주적 토론을 통해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국가가 필요하다. 1871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 등장한 ‘파리 코뮌’과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등장한 노동자 평의회 ─ 비록 나중에 스탈린에 의해 질식당해 1인 독재로 변질됐지만 ─ 는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1987년 6월 항쟁이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의 투쟁은 강부자와 재벌들의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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