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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운동의 조직 문제

반자본주의 운동은 어떻게 조직(활동의 체계화·준비·기획)해야 하는가? 운동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 물음들은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 논쟁되고 있는 쟁점들 중 일부다.

저명한 반자본주의 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은 〈네이션〉 지 최근 호에서 이 문제들을 다뤘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시애틀과 워싱턴의 거리에 등장한 것은 인터넷의 유기적이고 분산되고 상호 연관된 경로들을 반영하는 활동가의 모델이었다. 인터넷이 활기를 띠었던 것이다." 그녀는 세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운동이 "벌떼"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용어를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미군 보고서에서 차용하고 있다. 그 보고서는 사파티스타들이 "벼룩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인터넷과 반자본주의 운동가들의 세계적 네트워크 덕분에 그 전쟁은 "벌떼의 전쟁"으로 바뀐다고 말하고 있다.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벌떼 전쟁의 군사적 도전은 그 전쟁이 중앙 지도부도 없고 지휘 계통도 없다는 점이다. 벌떼 전쟁은 머리가 여럿이라서 목을 벨 수 없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내놓은 새로운 조직 방식을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고 있다. 그들은 운동이 단일한 보편적 길라잡이 이데올로기가 없고 온통 논쟁뿐이라는 사실을 찬양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운동 자체가 중요하며 심지어 운동의 최종 목표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새로운 운동은 많은 청년들을 잇달아, 즐겁게 급진화시키고 있다. 시애틀이 기막히게 좋았던 점은 바로 시애틀이 다양한 집단들, 곧 노동조합원, 환경 운동가, 평화주의자, 인권 활동가, 사회주의자, 농민, 농장주, 제1세계(서방)와 제3세계, 북반구(선진국들)와 남반구(후진국들) 등을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운동이 획일체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에 바탕을 둔 "벌떼"가 최선의 활동 방식인가?

첫째, 운동이 오직 또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조직된다는 것은 그 동안에 일어난 모든 주요 항의 투쟁들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시애틀과 워싱턴과 미요 모두에 자생성과 함께 고도의 조직이 수반했다. 또 다른 반자본주의 운동가인 수잔 조지는 올해 초 프랑스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이렇게 기고했다. "워싱턴에서 랠프 네이더가 창립한 단체인 퍼블릭 씨티즌 소속의 마이크 돌런은 1999년 봄부터 시애틀의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집회들을 개최할 장소를 물색하고 예약하는 등의 일들로 말이다." 회의장 예약을 하며 시애틀 거리를 걸어 다니는 일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조직할 수는 없다.

미요의 경우 그 원거리 소도시로 사람들을 이송하고 수만 명을 숙박시키기 위해 모금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엄청났다. 마찬가지로, 지난 9월26일 프라하 시위를 위한 조직은 기차표 예약, 포스터와 리플릿 제작, 티켓 판매, 모금 도우미 편성, 집회 개최 등등을 준비·기획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런 일들은 아주 중요하다. 컴퓨터가 없고 심지어 인터넷 탐색할 시간조차 없는 새로운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데, 이들을 항의 운동에 연루시키는 데는 이런 일들이 안성맞춤이다. 또한 이런 일들을 통해 직접 대면해서 하는 논쟁·토의·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주장 교환은 어떤 운동에든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일들에는 인터넷이 유용한 반면에, 인터넷이 완전한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다.

나오미 클라인 자신이 이에 대한 완벽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올해 4월에 열린 IMF/WB(세계은행) 회의를 항의자들이 폐쇄시키려 했다. 여러 집단의 항의자들이 새벽 6시부터 모든 교차로를 차단했다. 그들은 은행가들과 고위층 사람들의 회의장 출입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IMF/WB의 대표들은 일찍이 새벽4시에 회의장에 살금살금 몰래 들어왔다. 항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상황에서 조언 좀 구하려고 인터넷 카페에 급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식 행진 참가를 위해 교차로를 떠나길 원했던 사람들과, 대표들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면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교차로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항의자들은 둘 중 하나를 해야만 했다. 만일 항의자의 절반이 행진하러 간다면 도로 봉쇄는 무산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케빈 대너허가 메가폰으로 이렇게 외쳤다. "각 교차점[에 모여 있는 대열]은 자율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교차점이 그대로 봉쇄 시도를 고수한다면 그건 좋습니다. 만일 교차점이 행진하러 가시길 원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습니다."

운동이 느슨하고 자율적인 "머리가 여럿인" 벌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무익하다. 논쟁도 이와 비슷하다. 논쟁은 훌륭한 것이다. 논쟁은 모든 측면에서 배운다는 것이다. 수잔 조지 같은 사람들은 WTO처럼 전에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기관들에 대해 활동가들을 교육시키는 소중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논쟁은 또한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중요한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IMF/WB/WTO를 해체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기관들을 철저하게 개혁하고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가? 초국적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대신에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이런 논의들은 그냥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다. 예컨대 값싼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중국으로 생산을 옮기는 기업에 대한 논쟁은 미국에서 대단한 논란거리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맞서는 동맹을 구축하려 해 왔다. 그런데 그 동맹에는 팻 뷰캐넌 같은 우익도 포함돼 있다. 뷰캐넌은 인종 차별적으로 중국 노동자들의 "위협"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미국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라며 보호 무역 조처들을 옹호하고 있다. 뷰캐넌 같은 작자들이 운동에 참가할 여지는 없어야만 한다. 우리는 제1세계 노동자들과 제3세계 노동자들 모두가 체제의 희생자로서,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해 함께 단결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즉각적 질문은 아마도 운동의 목표에 대한 것일 것이다. 그저 하나의 대규모 시위에서 다른 대규모 시위로 옮겨 다니기만 할 것인가? 프라하 또는 니스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말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향후 전투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는 IMF/WB/WTO 같은 특정 기관들에 반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 구조 전체와 싸울 필요가 있다. 기존의 사회 구조 속에서는 극소수가 모든 재화를 소유·지배하고 무엇을 생산할지 결정한다. 이 체제야말로 세계에 노예제와 인종 차별을 도입했고 불평등·궁핍·전쟁을 만들어 냈다. 이 체제를 수선할 수는 없다. 그것은 타도해야 한다.

나오미 클라인 자신은 그녀 나름의 전략이 있다. 그것은 파편화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녀는 "더한층의 철저한 분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동조하며 인용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큰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제거할 수 없으므로 그 아래로, 그 옆으로 돌아서, 그리고 그 위로 가려 한다."

실제로 세계 자본주의 반대 운동은 장애물에 부딪혀 있다. 그것은 국제 지배 계급의 모습을 한 매우 중앙 집권적이고 강력한 적과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국 국방부를 당장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군대의 힘과 무기 대기업의 물자도 보유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패퇴시킬 힘을 가진 세력은 사회에 단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 세력은 GM이나 엑손이나 카길 또는 몬산토 같은 데서 일하는 노동자들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은 체제의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고, 스스로 민주적으로 생산을 조직함으로써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세력이다.

운동의 활력과 노동자의 권력을 서로 결부시킴으로써만 운동이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클라인은 이것을 그저 독단적 이데올로기로만 여기고, 특히 혁명적 정당으로 조직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그러나 혁명적 정당의 목표는 민중을 위해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아니다. 혁명적 정당은 사회의 가장 전투적인 부문을 조직해 그들이 더 광범한 사람들을 연루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혁명적 정당에 속한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 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사회주의적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기업주에 맞서 조직할 수 있고, 투쟁이 진보하도록 이끌 수 있는 투사들의 네트워크를 확산시킴으로써 말이다.

우리에겐 운동 내의 민주주의와 자생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체제에 맞서 우리의 세력을 중앙 집권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도력은 바로 우리가 치명적인 적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밑으로부터의 진정한 사회주의는 높이 위로부터 교조를 하사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개량주의 정당이나 스탈린주의 정당의 배신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권력을 사용해 밑으로부터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는 광범하고 다양하고 역동적인 운동을 구축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의 교훈과 미래를 위한 전진에 대해 주장하고 논쟁하는 것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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