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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온라인] 자발성주의에 대한 도전은 중요합니다

〈맞불〉 90호 ‘현 촛불시위의 잠재력과 과제’에서 최일붕 씨는 촛불 운동이 진전하기 위해서는 자발성과 리더십(사회단체의 의식적인 개입)이 상호결합 돼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맞불〉 91호 ‘자발성주의자 비판에 대해’라는 구태옥 씨의 독자편지는 이 글의 핵심과 맥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일붕 씨의 기사에서는 “공식적인 행사가 끝났음에도 도로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적극적인 시위 참가자들을 비민주적 태도의 발로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적극성이 흩어지지 않고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용의주도한 계획·조직·리더십과 대중의 자발성을 서로 대립시키지 말고 조화시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구태옥 씨는 일부 시위대들의 ‘유감스러운 행동’(방송차 마이크와 확성기를 빼앗는 등)이 과도한 적극성, 국민대책위 행진 계획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발성주의라는 비판은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발성주의는 단지 일부 적극적인 사람들의 성급한 오해가 아니라, 사회단체의 개입이 개인들의 자발성을 저해하므로 조직을 배제해야 한다는 아나키즘적 입장입니다. 방송차와 확성기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감은 사회단체가 행진을 주도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저는 최일붕 씨의 주장처럼 대중적 자발성은 지지·고무해야 하지만 구태옥 씨와 같은 자발성주의에 대한 정치적 안이함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성주의가 결코 민주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분열을 방조해 돌이킬 수 없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대중 행동이 발현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실행하고 과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의식적 개입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대개 검증되지 않는 소수 개인들에게 결정권이 맡겨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매번 운동의 중요한 결정들이 필요할 때, 타이밍을 놓치고 자발성에만 의존해 각자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대열이 분열돼 운동은 결정적 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최일붕 씨가 지적했듯이 단결은 ‘각자 알아서’ 활동하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쟁취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발성주의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국민대책회의가 자발성주의자들의 ‘순수성 훼손’ 비난에 위축돼 초기 거리 행진을 주도하는데 주저했고, 이런 혼란은 이후에도 얼마든지 그리고 결정적 시기에 겪을 수 있습니다.

1백만 명 넘게 참여한 6·10 촛불 시위를 대다수 언론은 ‘자발성의 미덕’으로만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이명박 퇴진 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물음에 갈증을 느끼고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자발성주의 그늘’에서 이 물음에 대답하기를 주저해야 합니까? 아니면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갖고 그것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면서” “물음에 응답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운동의 성장과 단결을 쟁취해야 함을 강조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