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현실’이 보여 주는 의료 민영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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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촛불’에 놀란 이명박 정부는 “수도, 의료보험, 고속도로는 민영화 불가”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동시에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등 뒷문을 열어놓고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은 대형 병원과 보험사들의 배를 불릴 것이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권은 갈수록 사각지대로 내몰릴 것이다.
그리고 여기, 악몽 같은 우리의 미래가 곧 자신의 현실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아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4년이 다 됐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오히려 늘어 18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도 매년 수만 명을 ‘인간 사냥’해 강제 출국시켜 만들어 낸 수치다.
이들이 ‘불법 인간’으로 낙인찍힌 것은 정부의 잘못된 이주노동자 정책 때문이지 절도나 살인 같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이 ‘불법’이라는 신분 때문에 모든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돼 있다.
소외
심지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조차 겨우 60퍼센트 정도만이 건강보험 카드를 받았다(〈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보건 복지 현황〉, 홍승권). 사측이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려고 건강보험 가입을 나서서 해 주지 않는 것이다.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A씨는 한국에서 다닌 첫 직장에서 페인트칠을 했다.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직장을 옮기고 나서 얼마 뒤 코가 심하게 막히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A씨는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고 한 번에 보통 3천 원이면 될 진료비를 갈 때마다 2만 원 넘게 내야 했다. 나중엔 간단한 수술을 받는 데도 70만 원이나 들었다. 산재 처리라도 받고 싶지만 미등록 신분 때문에 그것도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10~12시간씩 일한다. 게다가 대부분 주6일제 근무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장에게 근무중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 병원에 가려고 하루 결근을 하면 악랄한 사업주들이 3일치 임금을 깎기도 한다. 이런 조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아파도 웬만하면 참다 병을 키우는 경우가 흔하다.
또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 B씨가 이런 경우다. 그는 몸이 아팠지만 일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폐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은 B씨에게 입원비와 수술비가 포함된 수백만 원의 보증금을 요구했다. 사측은 병원비를 보조해 주긴커녕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그를 해고했다.
물론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보다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어쨌든 법률상으로는 4대 보험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의 의료 민영화 정책은 이주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만들어 낸 이런 작은 성과마저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 전국을 뒤덮고 있는 촛불은 더욱 활활 타올라야 한다. 그래서 의료 민영화를 저지하고 ‘아프고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등록 이주노동자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든 ‘아프고 돈 없어도 치료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