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탑 폭파와 북미관계 개선의 전망
〈노동자 연대〉 구독
최근 북한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핵신고 목록을 제출했고,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이번 영변 냉각탑 폭파는 지난 5월 초 미국이 제안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핵보유 야망을 포기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실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보여 주기 위한” 상징으로 이 행사를 기획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테러지원국·적성국교역금지법 대상 제외 조처에 착수했다. 물론, 이 조처는 미국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손쉽게 되돌릴 수 있고, 미국은 이외에도 다른 제재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 유엔 결의안 등의 제재도 아직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부시는 냉각탑 폭파 같은 상징적 행사를 통해 모종의 성과를 ‘과시’해야 할 만큼 처지가 군색하다. 또한, 이것은 이란 공격 여건을 갖추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6자회담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북핵 협상 과정에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쪽은 대체로 미국이었고, 따라서 6자회담의 앞날은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북핵 협상은 이제 본 게임에 들어 갈 준비를 마치기 시작했을 뿐이다. 당장 플루토늄 보유량 검증 문제, 고농축 우라늄 문제, 시리아-북한 핵 협력설이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핵시설을 폐기한 후의 보상책이 무엇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북한은 경수로 제공을 원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핵무기 폐기 이후에야 논의할 수 있다고 못박은 바 있다.
북한의 핵무기 폐기 문제는 갈 길이 까마득하다. 사실, 북한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군사·경제적 압박의 산물이다. 노무현조차 “[북한 핵이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 핵무기 폐기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근본에서 바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부시의 승리?
CNN은 이번 냉각탑 폭파를 두고 “부시의 승리”라고 했지만, 이는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무엇보다 부시는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최근의 유화 국면은 미국의 힘의 한계를 반영한다.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는 클린턴 시절의 제네바 합의를 두고 “핵무기 폐기를 위해 북한을 매수한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이제 부시는 냉각탑 폭파 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식 대북 정책의 졸렬함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명박은 “부시의 푸들”(〈워싱턴포스트〉)처럼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해 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다 비용만 지불하거나, 북미 유화국면에서 대북 강경 대응쇼를 하다 고립돼 꾀죄죄하게 된 김영삼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부시가 후퇴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이 중동 전선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늪에 빠졌고, 이 위기를 대이란 확전을 통해 탈출하려는 모험도 준비중인 미국은 현재 북한에 집중할 군사적 능력이 별로 없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실험을 마냥 방치하는 것도 곤란했을 것이다. 이리 되면 일본, 한국, 대만의 핵무장 욕망은 연쇄적으로 커질 것이고, 이는 중국과의 갈등과 긴장을 높일 것이다. 주변국들은 이를 미국의 동북아시아 질서 관리 능력 감퇴로 여길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묶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시의 유화책은 상황의 변화에 임기응변하는 대증 요법이다. 마치 2003년 이라크 침공의 지반을 다지기 위해 리비아를 확실히 매수했던 식의 ‘일관성’은 없다.
오히려 미국은 핵무기 포기와 관계정상화를 맞바꾸자는 북한의 제안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무시해 왔고, 앞으로도 까다로운 조건들을 달 것이다.
설사,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 해서 미국이 북한을 포용할지도 미지수다. 2003년 당시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제임스 켈리는 “완전히 포용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 포기뿐 아니라] 인권, 테러, 미사일, 재래식 무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사실, 미국은 번번이 북한의 대외 관계 개선 노력을 좌절시켜 왔다. 1, 2차 핵위기 모두 북한이 주변국들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악마화해 동아시아 패권 유지의 빌미로 삼는다는 제국주의적 전략과 연관돼 있다. 2001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한 보고서는 이를 보여 준다.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면 미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감소[하고], 미국이 포용정책을 추진한다면 미국의 안보 패러다임이 무너지며,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을 약화시킨다.”
선제공격 독트린
최근 부시가 가끔 내뱉는 불가침 발언(서면 약속은 절대로 하지 않는)과는 모순이게도 선제공격 독트린은 한반도에 여전히 존재한다. 남한의 공격적 군사변환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미 남한 국방비는 북한 전체 GNP보다 많을 정도다. 게다가 최근 이명박은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에 쓰일 수 있는 수천억 원대의 탄도미사일 조기경보 레이더를 구입하려 한다.
연말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가 당선하면 미국의 대북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을까? 답은 매우 회의적이다. 1994년 전쟁 위기를 부른 게 클린턴 민주당 정부 시절이다. 이후 제네바 합의를 무시하며 시간만 끈 것도 마찬가지다.
오바마는 부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방침에도 시큰둥하다. 그의 대선 공약은 “북한이나 이란처럼 규칙을 위반하는 국가는 자동적으로 강한 국제 제재에 직면하도록 핵확산금지조약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인 반전·반제국주의 운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