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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불능화 조처 중단 ─ 미국에 책임이 있다

북한이 핵불능화 조처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영변 냉각탑 폭파 쇼의 먼지가 가라앉자 북미 간에 어정쩡하게 봉합됐던 진정한 문제들이 다시 드러났다. 애초 미국은 북핵 사태가 더 악화하는 것을 막고 이를 6자회담 틀 내에 묶어두려 고농축우라늄 문제와 플루토늄 추출량 문제, 시리아 핵협력설 등의 뜨거운 문제들을 북한 핵 신고와 분리해 미뤄뒀었다.

미국과 남한의 우파들은 북한이 “생떼”를 쓰는 양 묘사하지만, 떼 쓰는 쪽은 오히려 미국이라는 게 진실에 가깝다.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조차 “신고에 대한 대가인 테러지원국 해제도 지연시키면서 난데없이 검증을 강하게 요구하니까 불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시한을 넘기고도 북한을 압박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이 불능화 조처 중단을 유관국에 통보하기 하루 전인 13일에는 미국 대북 인권특사 레프코위츠가 개성공단 노동자 인권 실태를 조사하겠다는 위선적인 핑계를 대며 북한 입국을 요구하기도 했다.

검증 체계 협상 와중에도 미국과 한국은 대규모 군사훈련인 을지포커스 프리덤 가디언(UFG)을 진행했다.

반면, 북한은 대체로 합의 사항을 이행해 왔다. 불능화 대상 11개 항목 중 8개를 이행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의 상응 조처인 대북 중유 지원은 약속된 1백만 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북핵 문제 해결 2단계 과정(불능화와 신고)의 밑그림을 그린 10·3 합의에 따르면 북한의 핵 신고에 상응하는 미국 쪽의 조처가 테러지원국 해제임은 명백하다. 북한의 주장대로 ‘검증’ 문제는 당시 합의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핵 신고와 검증 문제가 뗄 수 없는 하나의 단계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미국은 2단계에서 3단계(핵프로그램 폐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검증’을 들이밀며 시간만 끌고 있다. 이는 미국이 사태를 봉합하는 데 급급했지, 북미 관계 개선에는 진지한 관심이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미국의 딜레마

이런 데는 미국 대북 정책의 딜레마가 반영돼 있다. 힘으로 제압하지는 못해 아예 판을 깰 수 없는 ‘현실’과, 그렇다고 확실하게 북한을 포용하지도 못하겠다는 ‘의지’ 사이의 괴리가 그것이다.

북한이 모든 검증 체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사실상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있는데, 북한은 이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특별사찰 문제로 1994년 한반도는 전쟁 위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북한이 “이라크에서처럼 제 마음대로 가택수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라고 경고한 것처럼, 특별사찰은 제국주의적 횡포라는 성격이 강하다. 이라크 전쟁 직전 후세인도 이런 종류의 특별사찰을 받아들여 대통령궁까지 사찰당했다. 그러나 미국은 특별사찰로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찾지 못했는데도, 이에 아랑곳 않고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패권의 약화

설사, 북한이 특별사찰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해 북한을 압박하고, 테러지원국 해제와 같은 기존 합의를 파기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은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핵시설 복구도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는데 사태가 장기 교착하면 국제원자력기구와 미국 감시단을 추방하는 카드도 고려할 개연성이 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6자회담의 운명은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미국의 합의 불이행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최근 미국 패권의 균열이 북한에 숨 쉴 공간을 넓혀 주는 측면이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수렁에 더해 미국은 그루지야에서 굴욕을 당했다. 미국의 관심은 현재 그루지야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불능화 조처 중단에 당장 미국이 강경책을 쓸 여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북한은 “우리는 미국에 ‘고분거리지 않는 나라 명단’에 그냥 남아 있어도 무방하다”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패권의 약화가 자동으로 한반도 평화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힘의 약화를 핵심 동맹국가들(특히 남한과 일본)의 군사 능력 강화로 메우려 할 것이고, 이는 중장기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것이다.

결국 한반도 평화 진전은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반전 운동의 진전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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