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러시아ㆍ그루지야 전쟁의 진정한 패배자는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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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전쟁이 진정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러시아는 그루지야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부시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기간 군사 시설을 체계적으로 파괴한 후, 여전히 그루지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카프카스 지역에서 사카슈빌리가 패배자라면, 전 세계적 수준에서는 미국이 패배자다. 단기적으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그렇다.
일간지의 머리기사를 넘기고 전문가 논평란을 보면, 부시 정부는 전임 클린턴 정부로부터 계승한 정책 때문에 집중포화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클린턴과 부시는 냉전 이후 러시아가 쇠약한 틈을 타 나토 가입국을 러시아의 국경 지역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펴 왔다.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기원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심층보도는 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인 제임스 콜린스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리에게는 방어할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진지한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부시 정부는 이런 오만함에 더해 무모하기도 했다. 고위 정보 분석가였던 한 인사는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카슈빌리의 군대를 훈련시켰고 그는 군사적 모험에 동원할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소수 정예부대를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정보 기관은 이것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느꼈다.” 부통령 딕 체니는 한술 더 떠 스팅거 지대공 미사일을 그루지야에 판매하려 했다.
그러나 그루지야 위기는 부시 일당의 무능함 이상을 드러냈다. 미국 입장에서 더 곤혹스러운 것은, 이 사건이 미국이 가진 힘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 준 것이다. 문제는 단지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이 묶여 있어 카프카스에 개입할 수 없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설사 미국이 군사적 여유가 좀더 있었다 하더라도 카프카스 파병은 러시아와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부시와 체니도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핵전쟁을 각오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미국 정부의 약점은 러시아를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의 문제를 두고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지난주[8월 19일] 나토 외무장관들은 러시아를 성토하고 그루지야를 지지했지만 어떤 구체적 행동을 결의하지는 않았다. 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는 “용두사미”라고 비꼬았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를 상대로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조처들 ─ G8에서 축출, WTO 가입 보류 등 ─ 은 기껏해야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이다. 또, 그런 조처들은 이 기구들이 진정한 국제기구가 아니라 서방 지배를 위한 도구라는 인상을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 강국들에게 심어 주는 역효과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 정부에게는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모스크바 소재 카네기센터의 마샤 리프먼은 옛 소련 핵무기들에 대한 통제 문제,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원 문제, 이란·북한의 핵프로그램 중단 문제 등을 예로 들면서 러시아가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미국이 러시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더 많으므로 “러시아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럽연합의 경우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경제 전선에서 취약한 면이 있다. 러시아 주가는 지난 두 달 동안 25퍼센트나 폭락했다. 그루지야와 전쟁이 발발한 주에는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1백60억 달러나 줄었다.
그러나 이런 자본 탈출을 적절한 맥락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러시아는 여전히 5천8백10억 달러의 외환 ─ 세계 3위 ─ 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자신감과 능력은 이런 에너지 호황에 힘입었다. 러시아 정부는 앞으로도 강한 면모를 보이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시첸코는 사카슈빌리처럼 나토 가입을 원한다.
우크라이나는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친서방계와 친러시아계 정치 세력으로 분열해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통치하는데, 이곳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지이기도 하다. 러시아·그루지야 전쟁 동안, 유시첸코는 그루지야 공격에 동원된 러시아 전함들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기지로 돌아오는 것을 가로막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다른 위협들처럼, 이것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당분간은 러시아가 칼자루를 쥐고 있을 것 같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