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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파산과 일본 정치의 위기

‘만화 오타쿠’ 아소 다로가 일본의 새 총리가 됐다. 아소 다로는 “창씨 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했다”는 망언으로 유명한 우익 정치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인 징용으로 악명 높은 아소탄광의 사장이었다. 이 탄광에서 조선인 5천 명이 가혹한 중노동으로 죽었다. 아소 다로는 대북 선제 공격을 주장한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소 다로는 자민당 내에서 소수파 파벌 출신이다. 그는 자민당의 심각한 위기를 배경으로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자민당은 11월 정권의 운명을 가를 총선에서 패배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후쿠다를 내칠 수밖에 없었다.

고이즈미-아베-후쿠다를 배출한 자민당 내 최대 파벌 마치무라파는 사분오열한 상태다. 자민당 정권의 지지율 폭락은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을 동요시켰다. 공명당이 이탈하면 자민당은 정권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최근 공명당은 선심성 정책이라 할 만한 ‘정액 감세안’을 자민당에게 관철시켰다. 정액 감세는 대체로 서민에게 유리한 것인데, 그동안 자민당이 내세운 ‘재정 건전화’ 방침을 거스르는 것이다.

사실, 전 총리 후쿠다의 사임은 고이즈미 이래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노선’의 최종 파산이라 할 만하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자민당을 위기에 빠트린 것이다.

유동성

고이즈미-아베-후쿠다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노선의 주된 희생자는 사회적 약자였다. 자민당 정권은 매년 2천억 엔에 이르는 복지예산 삭감 정책을 추진해 왔다. 현재 일본의 빈곤률은 OECD 국가 중 1, 2위를 다툴 정도다. 61퍼센트의 가구가 평균 소득 이하를 벌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를 보면 1997년 한 가구당 평균소득이 6백57만 엔이었지만 2006년 5백66만 엔으로 줄었다.

이런 ‘구조 개혁’ 노선은 경제를 살리지도 못했다. 일본 경제는 2000년대 중반 살짝 회복하는 듯했지만, 지난해 다시 하강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올 2/4분기 들어서는 마이너스 성장했다. 이 ‘회복기’ 동안에도 소득 격차는 극심해졌고,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이 확산됐다.

아소 다로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재정 건전화’보다는 적극적 재정 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내세웠다. ‘노인 이지메 정책’으로 원성의 대상이던 후기고령자의료제도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소 다로의 앞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당장 총선에서 자민당이 안정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경우 아소 다로는 역대 최단명 총리가 될지도 모른다. 총선 결과는 자민당이 안정 의석 확보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이는 이후 일본 주류 정치의 유동성을 더 증폭시킬 것이다.

설사, 자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아소 다로가 총리직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주류 정치의 불안정성은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공격, 친재벌 정책, 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해외파병 정책 등 자민당 정권을 위기에 빠트린 근본적 모순들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가올 경제 위기가 아소 다로를 강타할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 부채는 GDP의 1백80퍼센트에 달하는데, 아소 다로식 경기 부양 정책은 이를 더욱 늘릴 것이다.

한편, 아소 다로의 총리 취임은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 위기가 결합한 상황에서 극우 정치인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아소 다로는 ‘군국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다 만신창이가 된 아베의 코미디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관련해서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매우 커질 것이다.

특히 세계경제 위기와 미국 패권의 쇠퇴가 맞물린 상황은 일부 일본 지배자들로 하여금 일본의 독자적 ‘군국주의화’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점점 더 부추길 것이다.

평화헌법

이런 사태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일본 민중에 달려 있다. 민주당이 진보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세계 제2위 국가의 제2당인 민주당 역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부추길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한다.

물론 현재 일본 노동계급은 여전히 사기가 높지 않다. 산업투쟁 건수는 장기불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서는 조금씩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

일본의 주류 좌파는 그들 자신의 우경화와 1996년 선거법 개악으로 주변화한 이후 거의 존재감이 없었는데, 최근 일본공산당은 당세를 확장 중이다. 신입 당원의 상당수가 20대다. 일본 공산당은 최근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고 있고, 사민당은 신자유주의 반대와 일본 ‘군국주의화’ 반대를 더 분명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개혁주의 전략을 수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인 ‘9조의 회’(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의 개정을 반대한다는 의미)에 가입한 단체들이 1만 개를 돌파했다.

일본 진보진영이 개방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방향으로 혁신할 수 있다면 일본 군국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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