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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 개마고원):
통쾌한 고발, 빗나간 분석

어느 덧 세계경제 10위 반열에 오른 한국 ─ 불과 60여 년 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 ─ 이 미국의 제국주의 점령을 도우러 아프가니스탄·이라크·레바논 등으로 진출한 지난 6년 동안 점령 지원군의 수장이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었을 뿐 점령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드러내고자 쓰여진 책 한 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몇 달 째 올라있는 사실은 한국 반전 운동이 역사는 짧지만 비옥한 토양을 축적해 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 전반부는 전쟁터로 뛰어드는 젊은 야수에 대한 괜찮은 고발장이다.

보통 미국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병했다고 하지만, 우석훈은 파병의 이유로 한국의 독자적 이익을 강조해 진실에 접근하려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강요에 마지못해 따른 게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북아에서 제국주의 경쟁의 위험에 대해서도 글쓴이는 경고한다. 저자는 “이미 한·중·일 세 나라는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주요 유전”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미국과 국제 여론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분석상의 타당한 측면이 있음에도 이 책은 뒤로 읽어내려 갈수록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많다.

첫째, 지은이는 한국에서 박정희 시절 “수출주도형 전략”을 채택하면서 “제국주의적 패권주의”가 발현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전쟁산업’(저자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건설산업)의 북방 진출이 부추겨지면서 “제국주의로의 전환” 과정을 밟았다고 설명한다.

한국 지배자들의 “패권주의”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로부터 비롯한다는 설명은 일리가 있다. 세계 최대 수출 대국인 독일은 더 많은 상품을 세계시장에 팔아치우려는 동기에서 독일군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다른 경제 구조를 가진 자본주의 국가도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진다는 단서를 달아야 할 듯하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제국주의 대리전을 치른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출발부터 몰락까지 폐쇄적 국자자본주의 축적 방식을 유지했다. 이 점은 제국주의의 핵심 동력이 “다수 자본”들의 경쟁이라는 점과 구소련이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서 서방자본들과 경쟁했다는 점을 이해할 때 설명이 가능하다. 제국주의는 일국의 특정 정책이 낳는 결과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위계질서에서 서로 높은 고지를 차지하려는 자본들 간의 경제적 경쟁과 군사적 경쟁이 결합되면서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본성이 낳는 결과다.

잘못된 대안

저자는 특히 “전쟁산업”인 한국의 건설산업이 포화상태인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제국주의화를 직접 추진”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이런 분석에서 출발해 저자는 “평화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글 어디에도 “평화산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평화에 기대어 … 경제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과반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정 자본을 전쟁/평화 자본으로 나눌 수는 없다. 미국 자본들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 국내의 다양한 자본가들이 소속되어 있는 전경련도 파병을 지지했다.

둘째, 저자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중·일 경제통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럽이 최근 20년 동안 “경제통합을 추진”해 “완전평화”를 이뤘으니, 우리도 이를 본받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유럽에 대한 환상인 동시에 제국주의를 일면적으로 보는 것이다. 유럽의 “역내 군사적 긴장”이 줄어든 기간 동안 유럽 ‘역외’ 지역에서 핏방울이 마른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는가? 저자는 유럽연합이 “완전평화”를 이뤘다고 하는 그 20년 동안에 프랑스가 1994년 르완다 학살에 개입했고 2004년에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파병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유럽 12개국은 20만 명이 죽은 1990∼91년 걸프전에도 돈줄을 대고 병력을 보내 손에 피를 묻혔다. 1999년에 유럽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세르비아를 폭격했고, 지금 NATO는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저자의 바람대로 혹여 일본과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또 하나의 경제블록을 형성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세력관계의 변화일 뿐이지 자본주의의 생래적 특징인 제국주의 체제의 약화는 아닐 것이다. 그리된다 한들 동북아의 “역내 군사적 긴장”은 일시적으로 완화될지 몰라도 유럽·미국과의 군사적 경쟁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의 분석이 틀릴 뿐 아니라 위험한 까닭이다.

레닌은 《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평화적 동맹은 전쟁을 위한 토대를 준비하며 이것이 전쟁으로 발전한다”고 지적했다. 끝없이 경쟁하는 자본주의 위계질서가 존속하는 한 평화는 기껏해야 일시적일 뿐이다.

셋째, 한국 대중 다수가 한국의 소제국주의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우석훈은 국회가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이라크] 파병에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그러나 파병은 ‘개혁’을 표방한 노무현이 지지기반의 이탈을 감수하고 감행한 것이었다. 파병은 노무현의 아킬레스건으로서 퇴임할 때까지 그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었다. “노무현 퇴진” 구호는 김선일 씨 피살 후 벌어진 1만 5천명 규모의 파병 저지 집회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왔다. 정부가 출국하는 자이툰 부대를 몰래 빼돌려 ‘도둑파병’한 까닭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2006년 12월엔 철군여론이 무려 90퍼센트가 됐다.

이런 분석들 때문에 저자는 대중의 능동적 역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듯하다. 전쟁을 막으려면 제국주의에 맞서는 거대한 아래로부터 대중운동이 필수적이다. “제2의 수퍼파워”로 불린 국제 반전운동은 미국 제국주의를 중동에서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일부 파병 동맹국 정부들이 실각하는 데서 파병 반대 정서가 중요한 구실을 하기도 했다.

나아가 우리가 전쟁의 뿌리를 도려내는 과업을 완수하려면 전쟁을 잉태하는 자본주의도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이 위험한 야수 집단을 상대할 때 올바른 분석과 대안이 없으면 당하기 쉽다. 이 책을 읽고 미래의 전쟁 위협에 공감을 느낀 독자들이 저자의 대안까지 공감할 필요는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