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레바논에 파병된 한국군이 레바논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사진을 한 언론에서 본 적이 있다. 사실 태권도는 한국의 해외 파병 역사와 늘 함께했다.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을 태권도 군 시범단으로 시작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태권도는 일제시대 한국에 보급된 일본의 가라데가 광복 이후 이름을 바꿔 남은 것이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만들고 초기 태권도계를 주도한 군 장성 최홍희는 이승만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장악한 뒤 대한태권도협회의 초대 회장은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 중 하나인 채명신이었다. 그리고 태권도의 결정적인 성장 계기는 베트남 파병이었다.
자신의 역사를 날조해 민족의 ‘국기’로 거듭난 태권도는 노동자를 더 착취하기 위해 노력하던 박정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물론 촛불집회에서 간혹 볼 수 있었던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처럼 태권도가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흥을 돋우며, 운동에 기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태권도 도장은 노동계급 자녀들이 복종, 규율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장이다. “자본주의 생산 과정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이상적인 준비 과정”(〈저항의 촛불〉2호 기사 중 ‘스포츠, 경쟁 그리고 자본주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