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 앤 버블》 (로버트 브레너, 정성진 역, 아침이슬):
세계경제 위기의 뿌리를 캐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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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레이건·대처 식 자유시장 자본주의 모델은 끝났으며, 시장에 대한 국가 규제와 공공 기능 정상화를 포함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는 인류에게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만이 허용돼 있다는 ‘역사의 종말’을 주장해 악명 높던 자다.
그토록 광적으로 시장을 옹호하던 자가 내놓는 대안을 얼마나 신뢰해야 할까? 시장을 적절히 규제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왜 이런 위기가 자꾸 재발하는 것일까?
지금 위기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뤄야만 한다. 그 점에서 로버트 브레너의 《붐 앤 버블》은 유용한 통찰과 자료들을 제공한다.
2002년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신경제’를 이끈 정보·통신 관련 주가가 대거 폭락하면서 위기가 도래했다. 바로 그 직전까지도 정보·통신 부문의 혁신을 통해 영원한 번영과 성장이 가능한 새로운 모델이 생겨났다는 주장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저자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 ‘신경제’ 호황과 이를 옹호하는 주장들의 취약성을 밝히 드러낸다.
구조적 문제
저자는 근본적으로 세계경제가 1970년대 이후 위기를 되풀이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체제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방대한 통계를 분석해 이를 입증한다.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회복되면서 호황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때의 이윤율 수준도 제2차세계대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장기호황 시기에는 훨씬 못 미쳤다.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근본 원인들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호황은 규모가 작았고 오래가지 못했다.
경제 위기의 원인을 단지 금융시장의 투기적 속성에서만 찾으려는 피상적 견해들과 달리, 저자는 생산 부문에서 발생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세계 시장에서,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이 격화해 생겨난 생산과 설비의 과잉 때문에 상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윤율이 하락했다.
저자는 생산 부문에서 발생한 문제가 금융 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잘 설명한다.
앨런 그린스펀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저금리를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려 했고, 미국 기업들은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자기 회사의 주식을 구입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자산이 늘어난 기업과 부유층이 투자와 소비를 확대하면서 이윤율 하락의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이 늘어난 다른 나라들도 숨통이 열렸다. 이 나라들이 수출로 번 돈을 다시 미국에 투자하면서 선순환이 형성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이 실제 획득하는 이윤 수준과 주가 사이의 격차가 커져 갔고, 이미 생산과 설비가 과잉인 부문에 투자가 늘면서 이윤율이 악화했다. 결국, 2001년부터 주가가 폭락하고 실물 경제가 둔화하면서 호황은 끝나고 위기가 시작됐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 경제에서 금융 거품과 부실이 만들어지고 꺼지는 과정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기본적으로 지금의 위기는 이 과정이 최근까지 지속되면서 더 거대한 거품과 부실을 만들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독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약점도 있다.
브레너의 분석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영향력 있는 개념으로 떠오르게 하는 데 기여를 했지만, 이윤율이 저하하는 원인에 대한 브레너의 설명은 잘못돼 있다.
그는 마르크스가 제시한 이윤율 저하에 대한 설명을 기각하고, 경쟁 때문에 상품 가격이 변동하는 것으로 이윤율 저하를 설명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관점은 착취율이 일정한 조건에서는 오로지 자본의 ‘유기적 구성’(생산과정에서 기계, 원료 등의 물적 요소의 가치와 임금 사이의 비율)이 커질 때만 이윤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약점이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방식과 근본적 한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분명히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