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취재:
이스라엘은 왜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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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오후 7시 30분, 명동 향린교회에서는 “이스라엘은 왜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는가?”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25개 시민·사회·정치 단체가 주최한 이 토론회엔 2백5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이스라엘의 학살에 대한 분노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광범한지 실감케 했다.
첫 발제자 홍미정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시온주의자들이 유포한 잘못된 신화들을 조목조목 논박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팔레스타인인들의 피로 얼룩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선 홍미정 연구원은 “전 세계에는 다양한 유대인이 있고 모두가 시오니즘[팔레스타인에 유대인만의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배타적 민족주의 운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혈연적으로 현대 유대인의 대부분은 5∼7세기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성경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그리스·로마 시대 유대인들이 주변 지역으로 쫓겨난 사건]를 근거로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가 ‘다윗과 골리앗’처럼 비춰지길 바라지만, 여러 번의 중동전쟁에서 드러난 것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우위”였고, 그 뒤에는 “서방 열강의 엄청난 지원이 있었다.”
세 번째로 시오니스트들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저항 세력의 힘을 과장하며 자신들의 군사력 사용을 정당화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를 극대화하려는 술책일 뿐이고 언제나 전쟁 개시를 결정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의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정치적으로 승리했다는 주장도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를 극대화하려는 서방 언론의 선전”일 뿐이다.
1993년 오슬로협정 등 이른바 ‘평화 프로세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를 게토화해 ‘거대한 감옥’처럼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또, 가자지구의 1백10만 명 등 이스라엘의 학살로 중동 지역 곳곳에 흩어진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마저 쫓아내려고 이스라엘은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다.”
보조 발제자인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가자지구는 2007년 6월부터 시작된 경제 봉쇄로 사실상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며,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UN의 정의에서 보더라도 인종 학살”이라고 주장했다.
또 얼마 전 “민주당이 다수인 미국 의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군비 지원 예산 24억 달러를 승인”했고, 곧 대통령에 취임하는 오바마도 “이스라엘의 학살을 방관하고 친이스라엘 유대계 정치인들을 요직에 앉혔다”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이스라엘과 ‘방산·군사 협력 공동위’를 여는 등 한국의 폭격기·장갑차를 이스라엘에 수출하려 애쓰고 있을 뿐 아니라 얼마 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유엔인권위 결의안 투표에도 기권하는 등 이스라엘의 학살에 동조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학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반전 운동과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뿐”이라고 강조했다.
보조 발제자인 미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 하마스에 대한 국내 언론의 왜곡을 꼬집었다.
‘강경’ 단체 하마스와 ‘온건’ 단체 파타란 구분은 “팔레스타인들을 분열시켜 지배하려는 시도”라고 일축하고 “2007년 쿠데타로 하마스 정부를 전복하려 한 파타가 과연 ‘온건’ 단체냐” 하고 되물었다.
또 하마스가 휴전에 반대한다며 휴전이 즉각 이뤄지지 않는 데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휴전안을 갖고 마치 휴전 자체에 반대하는 양 말하는 것은 공정치 않다고 비판했다. 즉, 이들이 말하는 휴전과 협상은 “사실상 이스라엘을 도와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끝으로 국제엠네스티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방패’로 활용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사실 ‘인간 방패’를 활용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보조 발제자인 김용욱 〈저항의 촛불〉 국제부 기자는 이스라엘의 침공이 “이스라엘 국가의 근본적 성격”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 즉, 식민지 정착민 국가인 이스라엘은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이 감히 주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위협하고 탄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서방 열강은 중동 지역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해 왔고 이스라엘은 서방 열강의 “경비견” 구실을 톡톡히 해 왔다. 그러나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당한 패배는 중동에서 ‘무적 이스라엘’ 이미지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따라서 ‘상처받은 야수’는 어떻게든 서방 열강에게 자신의 효용성을 입증해야 했고 그것이 이번 가자 침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김용욱 기자는 “전쟁의 군사적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올 정치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전쟁에 대해서도 홍미정 연구원과는 다른 평가를 내렸다. 당시 헤즈볼라와 레바논 민중이 입은 물리적 피해가 작지는 않았지만 애초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을 전혀 얻지 못하고 레바논에서 철수했던 점, 그 뒤로도 헤즈볼라가 여전히 강력한 저항 세력으로 존재하는 점을 지적하며 “명백한 이스라엘의 정치적 패배”라고 평가했다.
또 김용욱 기자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뒤 상황과 오늘날 상황을 비교하며 “중동 민중이 이스라엘 군대를 보며 공포감에 젖기보다 저항에 나서고 있는 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이틀 만에 20만 명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나섰고, 여기서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자국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규탄하는 구호도 나왔다. 이처럼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시위 때문에 아랍 각국의 친미 독재자들이 벌벌 떨고 있다.
한편, 오늘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반전 시위를 보면 2003년 2월 15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1천5백만 명이 거리로 나설 당시의 발전 속도와 전투성을 연상케 한다며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낳은 또 다른 정치적 효과로 지목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고 있지 못하다며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보며 다시금 이스라엘이 있는 중동의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두 국가 방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서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억압적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고 유대인과 아랍인,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공존하는 ‘하나의 국가’만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자국에 미군 장비 수송을 막아낸 그리스 반전 운동의 사례를 들며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과 국제적 반전 운동이 결합될 때 팔레스타인 해방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는 다양한 문제제기와 주장이 펼쳐졌다.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위협이 아니라면 서방 열강은 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가?”란 질문에 홍미정 연구원은 “미국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친미 아랍국가들도 지원하고, 심지어는 하마스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며 “분쟁 상태를 유지해 이스라엘을 무장시킬 근거를 찾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즉,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이슬람 저항 세력이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것이다.
반면 우석균 정책실장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투쟁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고, 미니 활동가도 “이슬람 운동은 친미 아랍국가에게 큰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즉,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투쟁이 아랍과 전 세계 민중에게 주는 영감, 또 그것이 불러올 정치적 효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오바마 정부 취임 전에 가자 침공을 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앞으로 확대될 각종 전쟁의 전초전 성격이 강한 것 아닌가?”란 질문에 김용욱 기자는 “미국 제국주의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앞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벌일지 모를 군사적 모험을 경계하고 이들이 전쟁을 통해 원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2월 총선을 노린 것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란 질문에 홍미정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선거와도 관련이 있지만 이 전쟁이 ‘1948년과 1967년 전쟁의 연장선’이라는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의 규정이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답변했다.
남편이 티벳인이라는 한 여성은 “이스라엘에 맞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보며 중국 정부에 맞서 저항하는 티벳인들을 떠올렸다”며 전 세계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다 같이 함께 싸울 것을 호소했다.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와 국방 협력을 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가?”란 질문에는 여러 플로어 토론자들이 “국익이 과연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 부합하는가?”, “전쟁을 통해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가?” 하고 반대 논리를 펼쳤다.
자유발언자로 나선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은 “반전 운동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학살자임이 분명하지만, 대부분 유대인들은 수천 년에 걸쳐 박해를 받아 왔다.” 특히 유대인 가운데는 시오니스트만이 아니라 “마르크스,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가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홍미정 연구원은 “마르크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팔레스타인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하고 자문한 뒤, “《오리엔탈리즘》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마르크스가 영국의 인도 지배를 긍정한 점을 비판했다”며 마르크스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이스라엘의 지배를 긍정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에 김용욱 기자는 “마르크스는 인도에 들어온 최신 시설들도 평범한 인도인들의 투쟁이 없다면 그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하며 식민지 토착민들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했다”고 반박했다. 또, “마르크스는 식민지 토착민들의 투쟁이 식민모국의 투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착목했다”며 마르크스의 사상이 오늘날 민족해방 투쟁의 전략·전술에서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홍미정 연구원은 “지금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 노동당과 1990년대 ‘평화 프로세스’의 당사자인 미국 민주당 모두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고 비판하며 이들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 것을 주문했다.
미니 활동가도 “오바마와의 협의 없이 이스라엘의 독자적 행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EU도 사실상 이스라엘 편”이기 때문에 “반전 운동을 넘어 반점령·반식민 운동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반전 시위와 스타벅스 불매 운동, 이스라엘 대사관 폐쇄 운동, 의약품 보내기 운동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김용욱 기자는 “한국의 반전 시위가 알 자지라 등 중동 언론에도 보도되며 중동의 저항 세력에게 힘을 줬다”며 한국에서도 반전 행동이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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