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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동맹에 참여한 노무현

“전쟁이냐 평화냐”

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평화를 내세워 표를 얻었다. 미국이 전쟁을 원하면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노무현은 전쟁 지지로 입장을 뒤집었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 사회의 동향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한미 동맹 관계의 중요성 등 제반 요소들을 감안해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국제 사회의 동향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비난과 항의로 요약된다.

미국은 유엔 상임이사국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온갖 협박을 일삼았지만, 결국 유엔의 승인을 얻지 못한 채 이라크를 침공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 매일 독일·프랑스·러시아·중국, 그리고 중동 국가들이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꾀죄죄한 “의지의 동맹” 리스트

노무현과 참전론자들은 미국이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럼스펠드는 미국이 1991년 걸프 전쟁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한 거짓말이다.

1991년 걸프전은 1백여 국이 지지하고, 34개국이 파병했다. 지금은 고작 30개국이 미국을 지지하며 미국·영국·호주, 이렇게 세 국가만이 파병한 상태다.

미국이 자랑하는 “의지의 동맹” 리스트는 아프가니스탄·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끝난다. 이 학살의 동맹에는 독재 국가들이 숱하게 끼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정부는 2001년 미국이 세운 꼭두각시 정부다.

아제르바이잔의 통치자 하이다르 알리예프는 옛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며 왕처럼 군림하는 흉칙한 독재자로 유명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한 바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독재자 이슬람 카리모프도 역시 옛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이었다. 지난 선거에서 카리모프는 97퍼센트의 표를 얻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라크만큼이나 억압적인 국가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프워치는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수천 명의 정치수와 고문과 처형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엘살바도르·니카라과·파나마·콜롬비아 정부들이 미국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의 유엔 대사 존 네그로폰테는 1980년대에 온두라스 대사로 일했을 때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에서 우익 암살단을 조직한 바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좌익 게릴라와 전쟁을 벌이는 데 미국으로부터 1억 3천만 달러(약 1천6백억 원)를 지원받고 있다.

“의지의 동맹”에 낀 필리핀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 단체들을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난한 동유럽 나라들도 이 동맹에 끼어 있다. 알바니아·불가리아·체코공화국·에스토니아·그루지야·헝가리·라트비아·리투아니아·마케도니아·폴란드·루마니아·슬로바키아. 이 모든 나라들은 정치적·재정적·군사적 지원이 절실한 나라들이다.

부시의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의지의 동맹”이 30개국 1억 2천만 명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30개국 1억 2천만 국민들 대부분은 전쟁에 반대한다.

그들의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꼭 마찬가지로 국민의 의사를 거슬러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위기 관리 정책

이라크 전쟁에 파병해야 ‘북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미국측에 요구할 수 있다고 노무현은 말한다. 한미 동맹이 틀어지면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려 해도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남한 정부가 미국이 일으킨 전쟁들을 지지해 여러 차례 파병했지만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미국이 전쟁에서 성과를 거둘수록 북미 관계는 오히려 더 긴장됐다.

1991년 걸프전 때 노태우 정부는 전쟁 비용 5억 달러와 함께 파병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음 차례를 묻는 기자에게 콜린 파월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김일성에게 가 볼 생각이오.” 그 다음 해 미국 CIA가 제시한 흐릿한 영변 사진 한 장으로 1993-94년 한반도 전쟁 위기가 시작됐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하고 10억 달러를 지원했다.

그 다음 해 부시 정부는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에 포함시켰다. 그 해 10월 북한을 방문한 켈리가 변변한 증거도 없이 북한이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시비를 걸었다. 이렇게 한반도 위기는 다시 깊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한 마디로 말해 위기 관리다.

우선, 북한을 ‘악’으로 만들어 위기를 부추겨야 한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된 마당에, 동아시아 지역에 미군을 주둔할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또, 미사일방어 체제는 무슨 명분으로 확립하겠는가?

다른 한편, 이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을 일본·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이것은 위험한 게임이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 등으로 대응할 수도 있고,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주변국들의 군비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정세에 따라 미국은 ‘대화로 윽박지르기’부터 ‘폭격’까지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이 어떤 방법을 구사할 것이냐 하는 데서 남한 정부의 의견은 결코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위기를 창출하고 관리함으로써 미국은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길들이려 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을 나포한 사건은 남한 정치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려 한 사건 아니었던가.

미국이 이라크에서 승전고를 올린다면, 미국이 다음 차례로 이미 지목한 국가들 ― 이란·북한·시리아 등 ― 을 한층 포악하게 다룰 것이다.

한반도에서 위기가 한동안이라도 완화되려면 미국이 이라크 침공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성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거나, 세계 반전 여론에 밀려 군대를 철수해야 한

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에서 굴욕적으로 군대를 철수한 뒤처럼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개입하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베트남 신드롬”)이다.

세계 반전 운동의 영향

베트남 반전 운동이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는 데는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반전 운동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1천만 명 이상 규모로 발전했다.

그런데도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 않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반전 운동은 이미 이 전쟁에 깊은 영향을 미쳐 왔다.

첫째, 세계 반전 운동은 세계 지배자들을 분열시켰고, 부시와 블레어가 이 전쟁을 계속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둘째, 이라크 민중에게 미국에 맞서 싸울 자신감을 주고 있다.

셋째, 반전 여론을 의식한 미군의 전략인 ‘속도전’은 지금 미국의 전세에 불리한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보다 396배 큰 군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반전 운동이 더욱 확산되고 강력해진다면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랍에서 혁명적 격변이 일어날 수도 있고, 영국에서 블레어가 실각할 수도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미국은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