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제국주의를 돕는 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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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4월 3일~4일)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리는 미국이 이끄는 전쟁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정상회담 항의시위에 전 세계 반전 활동가들이 모인다. 나토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9년 4월 4일에 창설했다.
항의시위 조직자는 “나토는 세계 평화의 걸림돌입니다”하고 선언했다. “냉전이 끝난 후에 나토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등 이른바 ‘세계 공동체’의 전쟁 도구로 탈바꿈했습니다.
“실제로 나토는 모든 대륙에 군사 기지를 세운 미국이 운전하는 장갑차일 뿐입니다. 비극이 늘어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나토는 지난 7년 동안 끔찍한 전쟁을 벌였고, 전쟁은 파키스탄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나토의 최근 행보에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스트라스부르 회담에서는 5천억 달러(약 6백70조 원) 규모의 군비 확충 계획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그루지야를 비롯한 최대 6개국의 나토 가입 여부를 논의하게 된다.
현재 나토는 아프가니스탄을 점령 중인 외국군 8만 명을 통솔하고 있다.
혼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혼돈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2001년 이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영국군 1백52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난해에만 미군 1백55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나토의 통제력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의 절반도 안 되는 지역에만 미친다.
아프가니스탄 점령은 “인도주의적” 개입이라고 알려졌지만,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은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 부정확하기로 악명 높은 무인(無人)‘정찰’기도 동원한 나토군의 무차별 공중 폭격 때문에 지난해에만 2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하거나 부상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발전은 퇴보하고 있다. 마약 제조는 급등한다. 법의 집행이나 사회복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가니스탄독립인권위원회(The Afghan Independent Human Rights Commission)는 전국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계속 나빠진다고 밝혔다.
2001년 침공 이후에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다수가 외국군의 주둔에 “호의적”이지 않음을 보여 줬다. 지방에서는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의 반(反)나토 투쟁이 늘고 있다.
오늘날 나토가 공공연하고 적극적으로 군사적 침공과 점령에 연루한다는 사실은 이 단체의 창설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나토는 1949년에 러시아와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Warsaw Pact)의 공격에서 서유럽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군사 동맹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나토는 유럽을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예속시키려고 고안됐다. 최고 지휘관은 언제나 미군 장교였다.
2차 대전 직후에 프랑스의 총리였던 드골 장군은 미국에게 얽매이기를 거부하며 나토에서 빠졌다. 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이번 회담에서 재가입하려고 한다.
초창기부터 나토는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회원국들의 ‘붕괴’에 대비해 군사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명백히 했다.
1949년에 나토는 이를 근거로 해서 좌파 게릴라와 우익 정규군 사이의 격렬한 내전이 벌어진 그리스에 개입했다.
나토의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이스매이 경(Lord Ismay)은 영국의 시각에서 이 동맹의 목적을 규정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러시아를 밀어내고, 미국을 끌어들여, 동독을 파탄내자”
해체된
나토는 냉전 시기를 지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된 1991년까지도 살아남았다.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는 나토가 존재할, 그나마도 의심스러웠던 이유가 사라졌음을 뜻했다. 하지만 나토는 없어지기는커녕 조직을 확대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나토는 핵선제공격 전략을 개발했다. 이 전략은 나토가 전적으로 방어동맹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무색하게 한다.
또한 나토는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소들의 등장을 주장하며 “범위 확장(out of area)” 전략을 세웠다.
이 전략에 기초해 나토는 1990년대에는 발칸전쟁에 개입했고, 특히 1999년에는 세르비아와 코소보를 11주 동안 폭격하면서 독립된 군사조직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줬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합법적인 승인 없이 진행된 이 전쟁들은 나토가 제국주의 군대로서 더욱 노골적으로 변모하는 분기점이었다.
나토의 세르비아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발견되는 모든 양상을 미리 보여 줬다. 민간인 폭격, 세세한 미국의 통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외피까지.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게는 “신(新)히틀러”라는 딱지가 붙었다.
코소보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작았지만 중요했다.
당시에 코소보 전쟁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 전쟁이 “인도주의적 개입”이 아니라 제국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의미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1990년대에 진행된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의 확산은 새로운 제국주의의 시대를 열었는데, 경쟁이 격해지면서 미국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동시에 미국의 이익이 동쪽으로 뻗어 나갔다. 당시에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나토가 베오그라드[세르비아 수도]를 폭격하던 1999년에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국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나토에 가입했다.
나토의 동진(東進)은 서구 제국주의의 주요 목표였다. 나토의 동진정책은 지난해 여름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이 벌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반제국주의 투쟁의 일부로서 나토에 반대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는 미군 1만 7천 명을 증파했고,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체 수는 5만 5천 명이 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군사 개입 역사에서 그 기간이 두 번째로 길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들에게 자신의 모범을 따르라며 더 많은 병력을 보내라고 강한 압박을 넣고 있다.
현실
나토군을 모두 합하면 8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려면 50만 명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실패하더라도 학살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외부 세력의 점령이란 민주주의의 확산, 평화적 발전과는 동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은 ‘나쁜’ 전쟁이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좋은’ 전쟁이라는 오바마의 말은 거짓이다. 둘 모두 재앙적인 전쟁이고, 기후변화, 기아(mass poverty), 세계적 경기 침체가 불러 온 더는 참기 힘든 경제적 현실과 같은 진정한 위험들에 우리가 시선을 돌리려면 전쟁을 끝내야 한다.
따라서 나토에 도전하는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더 큰 투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따라서 나는 최대한 많은 여러분을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나길 바란다.
번역 차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