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데이비스 칼럼:
오바마 시대, 미국 좌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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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11월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오바마가 제2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될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 성격이나 도덕적 신념, 평범한 미국인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 무엇보다도 경제 위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오바마는 확실히 루스벨트가 될 수도 있다. 링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뉴딜을 만든 진정한 동력은 루스벨트가 아니라, 작업장을 점거하거나 엄동설한에 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일자리를 요구한 수백만 명의 평범한 미국인들이었다. 그들이 뉴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힘이 워싱턴 정치를 왼쪽으로 움직였다. 1930년대 미국 노동자와 민중의 위대한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 루스벨트가 그토록 높이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네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인들에게 ‘경제 권리 장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경제 위기를 벗어나려면 새로운 경제 권리 장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힘이 강화돼야 한다. 1950~60년대 전후 황금기에는 임금 상승이 생산성 향상에 연동하는 등 거시경제에서 노동자, 특히 노동조합의 힘이 막강했다. 노동조합의 힘이 막강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에서 기층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힘은 1970년대 말과 레이건 시기를 거치며 약해졌다. 이 힘이 다시 강화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오바마의 구제 정책과 경기부양책이 실패하고 미국 경제가 고통스런 장기 침체에 빠져들면 우익 선동가들이 대중의 분노를 이용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공화당에서 반(反)이주민적 국가주의 정서가 가장 강한 분파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 남캘리포니아 국경 지역에 사는데, 이곳은 원래 반공주의 공화당 분파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소련이 몰락한 뒤로 그들은 공산주의 대신 멕시코 이주민들을 새로운 적으로 삼았다. 이들이 일자리 부족의 원인을 경제 위기가 아니라 이주민에게 돌리면서 영향력을 확대할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 좌파들은 노동자 운동과 사회 운동의 상식을 요구로 정식화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예컨대, 금융체제의 붕괴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가 금융 위기에 책임이 있는 부자들을 구제하려고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입한다면 좌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가가 사실상 금융체제를 소유하게 됐다면 금융체제를 공공 소유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주거, 교육, 의료 서비스를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 정책을 펴는 데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
다시 말해 미국 좌파의 임무는 누구에게 권력이 있고, 사회 제도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대안은 지금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이기보다는 상식적일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미국 좌파·진보세력·자유주의자들이 오바마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민주당 우파와 공화당의 눈치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정책을 입안할 때 공화당의 눈치를 보고, 공화당이 입법 과정에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는 클린턴 대통령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월스트리트 저널〉과 헤리티지재단 등은 오바마가 ‘계급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맞다, 지금 계급전쟁이 필요하다. 미국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심도 깊은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힘이 강해야 그런 개혁을 도입할 수 있다. 더 많은 저항이 필요하다. 거리가 더 시끄러워져야 한다. 결국 정당과 정치 지도자 들은 사회 운동이 작업장과 거리에서 이미 성취한 것을 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현 상황을 볼 때 앞으로 1~2년 안에 미국 좌파들이 급진화한 새 세대의 수혈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좌파의 존재, 즉 급진적 사회·경제 비판과 이기심·경쟁의 법칙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상상력이 있을 때만 지금 미국에 필요한 진지한 토론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