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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석 영화칼럼: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위한 변명

인도 뭄바이 슬럼가의 청년 자말의 인생역전을 다룬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각종 영화제에서 무려 84개의 상을 싹쓸이했고 2009년 3월 기준으로 총 2억 9천만 불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영미권 장편영화치고 상대적으로 저예산 ─ 1천 5백만 불의 제작비 ─ 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거둔 성공은 대단하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이 두툼하고 가파른 만큼 영화를 의심하는 의견들도 꽤 있다. 예컨대 영국인 감독 대니 보일이 인도 빈민가의 현실을 제대로 담았겠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속 리얼리티와 이를 다루는 감독의 시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통속적이고 장르 영화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영화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이들도 있다. 영화의 소재인 빈곤이 볼거리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문제, 그러니까 뭄바이의 현실 재현 문제는 인도에 가본 적도 없는 내가 확신 있게 뭐라 얘기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소설 원작자가 인도인이라는 점, 그리고 인도의 영화 비평가들 다수가 이 영화를 상당히 호평했다는 〈타임〉 기사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리얼리티를 둘러싼 의심은 괜한 걱정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 즉 이 영화의 진정성 문제는 과연 어떻게 봐야할까.

긴장과 모순

이와 관련해 먼저 염두에 둘 것은, 이 영화는 소재와 만듦새 사이에 긴장과 충돌이 있다는 점이다. 소재로 다뤄지는 빈민가 현실은 관객들의 보수성에 도전한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인 장르 영화적 속성은 관객들의 보수적, 관습적 기대감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진취적인 동시에 보수적이다.

이런 모순은 감독 대니 보일에게 늘 있어왔다. 그는 줄곧 사회적 소재를 기반으로 장르 영화를 만들었다. 〈쉘로우 그레이브〉 (1994) 는 런던 여피족들의 추악한 아귀다툼을 스릴러 장르에 섬뜩하면서도 유쾌하게 담아냈다. 〈트레인스포팅〉 (1996) 은 MTV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향연이지만 마약 중독에 인생 낙오자인 스코틀랜드 젊은이들의 삶을 바탕에 깔았다. 또 신자유주의적 좀비의 출현이라는 농담 섞인 비평적 찬사와 함께 좀비 영화의 한 획을 그은 〈28일 후〉 (2002) 는 1990년대 영국을 휩쓴 광우병 공포 분위기를 간접적인 맥락으로 삼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역시 마찬가지다. 찰스 디킨즈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짙게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디킨즈의 소설처럼 통속적인 이야기와 동시대의 생생한 현실을 한 그릇에 담아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화 속 현실과 등장인물들을 대하는 대니 보일의 시선과 거리감의 균형이 디킨즈처럼 꽤나 적절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영화는 어린 자말의 작은 키만큼이나 시선을 낮춰 현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서구인의 값싼 동정도 없고, 지식인의 쓸데없는 관념적 비관도 없다. 가끔 이미지와 사운드가 과시적일 때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다.

영화연출이란 결국 스크린 위 피사체를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눈높이로 얼마만큼 거리감을 유지하며 묘사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영화적 진정성이다. 그렇기에 연출의 균형감이 매우 단단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진정성 역시 단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영화의 장르 영화적 달콤함이 끝내 못마땅한 하드코어 관객들에게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시티 오브 갓〉(2002) 을 권한다. 〈콘스탄트 가드너〉(2005) 와 〈눈먼 자들의 도시〉(2008) 로 최근 연달아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브라질 빈민가 아이들의 잔혹한 성장 영화인 〈시티 오브 갓〉만큼은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다 준 인상 깊은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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