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진보 진영은 부도 기업 국유화를 요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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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회화’를 중심으로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
최근 쌍용차 처리를 놓고 일부에서 ‘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을 정상화한 다음 국가가 지배·소유하는 방식을 상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국유화’ 발상은 세 가지 점에서 한계가 있다. 우선,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만 고민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처리 과정 전반과 절차, 내용에 대한 고민이 없다. 소유·지배 구조가 기업 처리의 전부는 아니다.
둘째, ‘국가’의 구실을 과도하게 상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주역의 하나가 국가요 정부인데, 그런 국가·정부에 기업의 소유를 맡기는 것은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셋째, 역사적으로 ‘국가’ 소유 형태는 그 한계를 충분히 드러냈다. 사회적 소유를 공적 소유로 바꿀 때,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통제’가 없는 어떤 소유 형태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국유화’는 패배와 좌절의 역사이며, 더는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지금 정부와 자본이 조선사와 건설업체를 구조조정하면서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들이 기업 처리를 주무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채권단, 부실기업의 경영진이 바로 그들이다. 금융기업과 금융감독위원회가 기업 처리를 주무른다는 건 기업의 ‘수익’을 기준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을 처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적용하는 것이다.
법원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갖는 것도 문제다. 평생 법전을 뒤지는 일 말고 하는 것이 없는 판사는 총자본과 정부의 의지에 충실할 수밖에 없으며, 기본적으로 자본의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철저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자구계획’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은 대부분 정리해고를 포함한 인력감축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고, 노조는 이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참여와 개입
진보 진영과 노동운동이 기업 처리에 대해 대안을 찾으려면 기업의 소유 구조 이전에 기업 처리 과정과 절차부터 ‘사회화’해야 한다. 이때의 사회화란 부실기업을 가려내고 처리하는 모든 과정을 ‘사회적 기구’를 통해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금융과 정부, 자본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노동자·민중·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단위를 만들어 거기에서 다루고 결정해야 한다. ‘대의적 방식’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기업을 처리하는 데 있어 노동자·민중의 참여와 개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판단 역시 사회적인 기준에 따라야 한다. 절대 ‘수익성’을 기준으로 하거나 ‘흑자와 적자’를 기준으로 할 수 없고, 그 기업이 지역과 사회, 국가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라는 판단 위에서 기업의 여러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참여와 사회적 기구를 통해 기업의 처리 방식을 결정하면, 그때부터는 결정 사항에 따라 세부적인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없애는 방향으로 결정된 기업에 대해서는 청산 절차를 밟는 동시에 해당 기업의 종사자들에 대한 대책을 ‘사회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수평적 이동을 전제로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재취업 전까지 기존에 받은 임금의 최소 80퍼센트는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한 기업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상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적자금은 ‘정부의 자금’이 아니다(국유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를 간혹 국가의 돈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국민의 세금’이다. 그러므로 공적자금 투입 결정과 그 이후 투입규모와 투입된 자금 운영 등에 대한 모든 사안은 ‘국민’에 의해 통제돼야 하며,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주된 사업장이 있는 지역의 노동자·민중과 지역주민, 그리고 해당 기업의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공적자금 운영 및 관리위원회(가칭)’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유화’라는 조처는 사실 불필요하다. 이미 공적자금이 투입된 순간부터 그 기업은 사회적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투입한 규모만큼 해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해당 기업을 사회화하는 과정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이때, 기업 소유의 최종적인 양태는 해당 기업이 운영하는 사업이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덧붙여야 할 한 가지. 부실 판정을 받은 기업들은 그 순간부터 주요 주주들의 주식을 소각해야 한다. 그리고 대주주와 경영진의 핵심(이사급)에 기업부실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민·형사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법정구속형과 더불어 경영을 주도한 시점 이후 쌓은 개인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의 경영은 ‘공적자금 운영 및 관리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이사회에서 담당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노사는 ‘경영협의회’를 만들어 일상적인 기업 운영을 공동으로 협의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회화는 ‘소유 형태’를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차원의 정책에서부터 기업 하나의 소유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민중이 참여하고 통제하는 양식과 그 과정을 만든다. 현재의 경제체제에서건 새로운 노동자 중심의 사회에서건 중요한 것은 ‘민중에 의한 지배’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라도 자기 지배와 직접 통제가 대안 사회의 기본 원리가 돼야 한다.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는 투쟁의 결집점을 제공할 수 있다
정종남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 공동집행위원장)
기업이 부도나면 노동자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쌍용차 법정관리를 계기로 부도 기업의 일자리 유지 방안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정부의 대처는 기업주와 채권단의 이익을 지키는 데 초점이 있다. 쌍용차에서도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 후 매각으로 상하이차와 채권단(산업은행 등)의 이익을 보호하려 한다.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 상하이차의 지분은 그대로 보장하면서, 노조가 요구한 공적자금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오직 노동자를 쥐어짤 궁리만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주의 실패에 왜 노동자가 고통을 전담해야 하는가? 개별 기업주가 파산해서 노동자들이 실직 위기에 놓였다면 국가가 나서서 일자리를 책임져야 한다. 기존 경영진의 지분을 회수하고, 채권단의 빚을 없애고, 자금을 지원해서 노동자 해고 압력을 제거해야 한다. 이때 당연히 재원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국방비 삭감을 비롯해 재벌의 유보금 회수, 부유층 감세 철회 등으로 조달해야 한다.
부도 기업 처리는 기업주와 투기꾼 살리기가 아니라, 기업주와 부유층에 비용을 물려서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국유화 방식이어야 한다. ‘다함께’, 사회주의노동자정당준비모임,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해방연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이 이 같은 고용보장 방식의 국유화를 제기했다.
그런데 ‘국유화 요구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광범한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진보 진영 일각에서조차 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최근 민주노총이 주최한 쌍용차 문제 토론회에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공계진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장, 정명기 쌍용차 노조 자문교수 등은 노동자의 ‘진심’을 보여 줘야 교섭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며, “확실한 양보안”을 내라고 노조에 제안하거나, “산업 발전 전략적 관점”에서 기업 개선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보가 노동자에게 이로운 해결책이 된 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쌍용차 노조도 2천6백46명 해고 계획 발표 직전에 양보안을 냈지만 사측은 이에 아랑곳없이 더 큰 희생을 요구했다. 1998년 현대차나 2001년 대우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 희생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업회생 방안이나 산업 발전 전략에 집착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국가의 정책 우선순위에 도전하기
한편, 쌍용차 노조 정책 자문단에 포함된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이종탁 부소장은 국유화보다는 ‘사회화’(국민기업화, 지역기업화 등 노조의 지분 참여 형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부소장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기존 국유기업에 대한 불신은 정당해 보인다. 옛 소련이나 중국 등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국영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서유럽 사민당 정부, 한국의 공기업도 민주적인 노동자 통제와 하등 닮은 점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도 대규모 정리해고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카드를 뒤섞지 말아야 한다.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는 기존 사기업과 별 차이가 없는 ‘옆걸음’을 대안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다. 국유화 요구 투쟁은 경제 위기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물으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구하는 데 핵심 의의가 있다.
국유화 요구 투쟁은 무엇보다 현실의 필요 때문이다. 상당수 노동자들이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압력에 밀려 희망퇴직을 받아들인다. 공장 가동 비용 마련을 위해서라도 노동자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에 시달릴 때, 정부가 국유화로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럴 때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는 투쟁의 결집점을 제공할 수 있다. 경제 위기의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노동자 투쟁의 강도에 달려 있다. 국유화 요구는 그런 투쟁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미국 정부가 최근 시행한 국유화는 대량 감원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량해고를 전제로 한 국유화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투쟁이 중요하다. 따라서 국유화 요구에 담긴 투쟁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형식적 비판은 애초 문제의식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실, 모델로만 놓고 보면 노조의 부분적 지분 참여에 의의를 둔 ‘사회화’도 이윤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신디칼리즘 경향의 일부 좌파 활동가들도 국유화 요구가 자본주의 국유기업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며 그저 생존권 쟁취 투쟁이면 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존권 사수를 위해서라도, 개별 기업주가 책임지지 못하는 자금을 국가가 조달하도록 요구하며 싸우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거나 투쟁에 “혼란”을 자아내기는커녕, 개별 기업주와 해당 기업 노동자들만의 문제인 것으로 치부되는 부도 기업 고용문제에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불황기에는 한 작업장의 경제투쟁도 대정부 투쟁이 될 수 있고, 그런 방식으로 발전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부도 기업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 투쟁은 경제 위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부각하고 노동자들의 필요와 시장 논리가 충돌하는 모순성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국가의 정책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이 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불황기 노동자에 대한 책임 전가에 맞서 노동자의 필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투쟁이 더한층 발전할 경우 심오한 사회변화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부도 기업 국유화를 통한 일자리 보장 요구 투쟁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요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쟁취하려는 강력한 투쟁에 달려 있을 것이다. 쌍용차 노조가 그런 투쟁에 나서야 한다.
● [용어 설명] 신디칼리즘 : 노동자주의. 첨예한 정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 생산 현장에서 발휘될 수 있는 노동자의 힘을 압도적으로 강조하는 운동.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정치의 주도권을 개혁주의에 넘겨주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