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센 투쟁 끝에 복직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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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함께 남은 아쉬운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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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구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7달 만에 드디어 복직했다. 꿈적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계약해지를 철회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학자금을 제외하고 정규직노조의 단체협약을 모두 적용받게 됐고 아직 무기 계약직일지 정규직일지 확실치는 않지만 직접고용이라는 소중한 승리를 얻어냈다.
서울성모병원 비정규직 해고사태는 파견업체(간접고용 비정규직)로 소속이 변경된 후 2년이 되자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계약해지를 당해 ‘병원업계 이랜드 사태’라고 불린 사건이었기에 더 소중한 승리다.
물론 이번의 사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아직 병원쪽에서 2년 근무한 파견 노동자를 모두 직접 고용하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틸 것 같았던 서울성모병원의 후퇴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에 대한 희망을 보여 줬다. 당장 서울성모 노동자들과 환자들은 복직 소식에 함께 기뻐했다. 복직된 노동자들은 “열 번 찍으니까 나무[가톨릭의료원]도 넘어가네” 하며 놀라워하는 정규직 동료들의 축하도 한껏 받았다고 한다. 복직 노동자들은 이제 직접 고용됐고 단체협약 적용을 받게 되므로 정규직 노조 지부에 직접 가입할 수도 있게 됐다. 정규직과 식권 색깔까지 다를 정도로 차별을 받아야 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달라진 것이다.
많은 동료 직원들이 “비결이 뭐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쟁이었다. 병원측이 열 차례나 농성장을 폭력적으로 쳐들어와 — 때로는 수간호사까지 동원해서 — 조합원들을 짐승처럼 끌고 나왔는데도 노동자들은 울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로비 농성을 재개했다.
‘가톨릭 정신’에도 어긋난 해고 사태와 이에 대항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여론의 지지를 얻어냈다. 서울성모병원은 열 차례에 걸친 농성장 철거 외에도 구사대 투입, 부당전직 지시, 면담 거부, 24시간 감시 사찰, 국회 증인 출석 거부, 하루 벌금 50만 원짜리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실업자인 조합원 통장 가압류하기 등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든, 종교재단이라고 보기 힘든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탄압을 자행해 왔다. 병원측이 1인당 60만 원 정도를 파견업체가 매달 가로채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비정규직 고용을 고집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비정규직 백화점만이 아니라 노동탄압 백화점을 방불케 한 병원에 맞서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일회용 주사기가 아니다”,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호화판 병원 지으면서 노동자들 해고하는 병원은 각성하라” ….
울면서 환자들과 동료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던 이들의 눈물과 땀이야말로 서울성모병원을 물러서게 한 진정한 힘이었다.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천주교 내에서 가톨릭 중앙의료원과 서울대교구에 문제제기를 했던 여러 분들도 큰 힘이 됐다. 몇몇 신부님들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분들의 노력도 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원 안에서 미사를 집전해 주신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은 강남성모병원 측의 항의에도 굴하지 않고 감동적인 미사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셨다. 그날 눈물로 충혈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은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보건의료노조는 법률비용, 생계비, 서명 운동 등을 지원했다. 특히 보건의료노조에 소속된 여러 지부들의 지원과 지지 방문도 힘이 됐다. 동시에 매일의 촛불문화제와 주1회 집중문화제, 기자회견 등을 함께 조직한 ‘강남성모비정규지원대책모임’(http://cafe.daum.net/cmcbnj)도 큰 기여를 했다. 촛불시민들과 강남촛불 회원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역조직과 사회당 서울시당 등의 진보 정당들,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동지구협의회,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다함께 남부지부,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서부비정규직센터 등으로 구성된 지원대책모임은 굳건한 연대를 조직했다.
아쉬움
그러나 이번 합의 결과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대표에게만 3개월 후 복직을 강요했다. 한 달 동안 ‘사회봉사’와 두 달 동안 ‘자숙’을 한 후에 복직하라는 것이다. 또 가압류 비용 6천만 원 중 3천만 원을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복직을 양보하면서도 이런 굴욕적인 조항과 전례를 남겨 놓음으로써 ‘투쟁 바이러스’가 현장에 퍼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것은 이번 투쟁의 한계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요구한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위와 같은 독소조항을 받아들이는 것은 ‘굴욕적일 뿐만 아니라 잘못은 전적으로 병원이 했으므로 노동자들이 질 책임은 없다’고 반발하면서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다시 성모병원 측과 협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안타깝게도 그 요청을 거부했고, ‘재교섭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성모병원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보건의료노조가 함께하기 힘들다는 압력도 있었다.
비정규 조합원들은 “생애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며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게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지원대책모임 내의 8개 단체(다함께 남부지부, 민주노동당 서초구위원회, 사회당 서울시당,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부비정규직센터,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진보신당 강남서초당원협의회: 이상 가나다 순)가 전달한 이 상황에 대한 항의 의견서에도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번 투쟁에 연대하면서 산하 각 지부의 조합원들을 동원하거나 서울성모 정규직 지부 지도부를 설득해 병원을 압박하는 투쟁을 건설하기보다는, 병원과의 협상에 훨씬 더 의존했다. 병원 측에 압력을 넣기 위해 조합원들과 지원대책모임이 더 강력한 투쟁 방안을 제안할 때마다 ‘가톨릭의 특수성’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경우도 많았다.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 투쟁을 확대하기보다 투쟁의 김을 빼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 보면 지난해 12월, 가톨릭중앙의료원 직할 5개 병원 사제단이 ‘집중 투쟁 계획을 강행하면 5개 지부 단체협약을 개악하겠다’고 협박하자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집중 투쟁 계획을 철회했다. 보건의료노조 중앙간부들은 1백 일 투쟁 문화제를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 자제 요청을 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정규직 노조 사이를 이간질시키려는 병원 측의 공격에 휘둘리기도 했다. 병원 측은 ‘정규직 지부와 교섭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가 비정규직 때문’이라며 정규직 지부가 비정규직 농성자들을 지원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러자 정규직 지부 간부들은 노조 사무실에 있는 비정규직 농성 물품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고, 보건의료노조 본조 간부들이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성물품을 들어내는 일도 있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지원대책모임의 공식적인 항의 등에 압력을 받아 농성물품을 다시 가져다 놓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와 정규직 지부 간부들은 ‘현장 동력이 없다’고 했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연대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농성자들이 각 병동을 돌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면서 홍보전을 했을 때 단 하루 만에 정규직 조합원 40여 명이 기꺼이 연대 서명을 했다. 비정규직을 늘리며 멋대로 해고하는 것이 결국 정규직 노조를 약화시키고 공격하기 위한 것임을 정규직 노동자들도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정규직 조합원들을 공개적으로 설득하며 연대 투쟁을 건설하는 지도력을 보여 주는 것 아니었을까?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지난 몇 년간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양보’하는 잘못된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이런 ‘양보’가 아니라 투쟁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강력한 연대 투쟁이 아닌가!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5월 8일 성명을 내서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표명은 가톨릭 이념을 구현한 것으로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성명서를 읽으면서 농성을 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지원대책모임의 대다수 성원들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보여준 것은 가톨릭 이념이 아니라 비상식적인 노동탄압이었을 뿐이다. 정작 ‘가톨릭 이념’을 구현한 것은 끈질긴 농성 끝에 권리를 되찾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고 이들을 지원했던 일부 가톨릭 단체와 교인들이었다.
병원비 폭등을 부를 정부의 의료선진화 방안이 현실화되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병실과 악품 숫자가 늘어나고 병원비가 폭등할 것이다. 또 병원의 더 많은 인력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노동 강도는 더욱 강해져서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 쌓여갈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강행하겠다는 상황에서 그 피해자는 당연히 평범한 서민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병원 노동자들일 것이다. 그 점에서 서울성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는 의료민영화를 막아내는 투쟁에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투쟁의 여러 가지 아쉬웠던 점에서 분명한 교훈을 배우며 다음 투쟁에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