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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로 세상읽기:
사회주의자들은 자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존 몰리뉴는 영국 포츠머스대학 교수이자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

이전에 나는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문제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다룬 칼럼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항상 그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긴급하게 다뤄야 할 것 같은 주제들이 있어서 자선 문제를 다룬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이 글은 지난 2월에 쓰였다] 영국에서 특정한 자선 문제가 갑자기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떠올라서 모든 사회주의자, 모든 혁명가가 ― 사실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 그 문제에 대한 태도를 취해야 하게 됐다.

어떻게 해서 자선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됐는지는 나중에 다루겠지만, 어쨌든 이 에피소드 덕분에 나는 자선 문제를 다뤄야겠다고 확신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주의자들이 자선 문제에 관해 강조해야 하는 첫째 요점은 대부분의 경우 자선 단체는 자신이 다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옥스팜을 살펴보자. 세계의 빈곤과 기아를 퇴치하는 것이 목표인 옥스팜은 전 세계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영국에서는 가장 크고 성공적이고 유명한 자선 단체다. 2007~2008년에 옥스팜은 2억 9천9백70만 파운드[약 6천3백억 원]를 모금해서 2억 1천4백20만 파운드[약 4천5백억 원]를 썼다. 이 돈 자체는 꽤나 거액이지만 세계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것은 빈곤 문제가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전 세계에는 모든 사람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은 식량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는 몇 천억 원이 아니라 수백조 원 정도는 돼야 의미 있는 대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자선 행사 축에 들고 BBC가 저녁 내내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칠드런 인 니드’(Children in Need)[불우 어린이 돕기]는 약 2천만 파운드[약 4백20억 원]를 모금했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 한 군데에 투입된 정부 구제금융만 해도 2백억 파운드[약 42조 원]였다(‘칠드런 인 니드’ 모금액의 1천 배나 된다). 버락 오바마에 따르면, 2008년 말에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에게 지급된 보너스가 2백억 달러[약 30조 원]에 이른다. 2008년도 세계 군비 지출이 1조 4천7백억 달러[약 2천2백28조 원]였고 그중에 7천1백10억 달러[약 1천77조 원]가 미국의 군비 지출이었다. 기타 등등.

기부를 호소하는 해외 자선단체 광고

물론 자선 단체 옹호자들은 이런 지적에 대해 할 말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단지 뭔가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좋다, 그러나 빌딩에 불이 났을 때 물총으로 불을 끄려 하거나(그것도 뭔가를 하는 것이기는 하다) 산불이 났을 때 물뿌리개나 정원용 분무기로 산불을 끄려 하는 것을 제대로 된 소방 활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자선 활동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적절한 소방차보다는 물총에 더 가깝다는 것이 진실이다.

자선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실

그리고 이것이 이야기의 다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선의 문제점은 원조 금액이 충분치 않다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선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실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지배자들은 실제로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을 때조차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뭔가를 하고 있는 척하는 데 자선을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 정부는 비겁하게도 일반으로는 이스라엘 국가를, 특별하게는 가자 침공을 지지했으면서도 인도주의적 원조랍시고 겨우 2천만 파운드(또 2천만이다)를 약속하며 생색을 냈다.

각국 정부는 교육·의료·복지 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자선과 ‘자원 봉사’를 이용할 수 있고 흔히 그렇게 한다. 나는 병원이 새로운 구명 설비를 도입하려고 모금을 호소하는 것을 볼 때마다 왜 군대는 모금을 하지 않아도 무기 등을 마련할 수 있느지 묻곤 한다.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미사일 시스템을 갱신하는 데만 2백억 파운드(또 2백억이다) 넘게 필요한데도 이것은 모금하지 않고도 언제나 마련된다.

많은 자선 단체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들 자신이 상당한 관리 비용이 들고, 많은 활동가나 자금 모집책, 마케팅 관리자 들에게 수지 맞는 직업을 제공하는 기업체가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엄밀하게는 불법적이거나 비밀스런 활동이 전혀 없더라도(가끔은 그런 활동도 있지만)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한 모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10만 달러[약 1억 5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것은 좀 꼴사납다. 미국 최대의 자선 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를 운영하는 브라이언 갤러거의 연봉은 97만 3천 달러[약 14억 7천5백만 원]다. 이 문제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NGO들의 경우에 특히 심각하다. 그런 곳에서는 NGO 활동가의 소득이 현지 주민보다 수백 배나 많다.

또, 폴 매카트니나 보노처럼 엄청나게 부유하고 유명한 자선 사업가들이 콘서트 등을 열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에 기부하라고 촉구한다. 예컨대, 보노의 자선 단체인 RED는 웹사이트에서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를 위해 2년 동안 1억 달러[약 1천5백억 원]를 모았다고 발표했지만, 진실은 보노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그 돈을 낼 수 있었다는 것과 그가 평생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선의 본질에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자선이 사회적·인도주의적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집중하고 자선의 수혜자들을 무기력한 수동적 피해자로 묘사할 뿐 저항이나 자기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들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근본적 신념은 빈곤과 인간의 타락 같은 근본적 문제들이 노동 대중 자신의 집단적 투쟁으로만 해결될 수 있고 해결될 것이라는 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선 단체 기부 동기를 무시해서는 안 돼

그러나 이 모든 비판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특히 우리가 자선 문제를 단지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 정치의 문제로 다룰 때는 더욱 그렇다. 자선의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동기에는 사회주의자들이 관심을 갖거나 격려할 필요가 있고 분명히 기각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자극이 있다. 예컨대, 내가 직장의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누군가 노숙자들을 위한 모금통을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면 나는 다만 얼마라도 기부함과 동시에 왜 영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 노숙자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와 그런 자선 문제를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또, 스스로 도울 수 없거나 집단적 투쟁을 할 수 없는 개인이나 단체도 많고 사람들에게 긴급 지원이 필요한 때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선이나 원조와 연대(사회주의자들이 열렬히 지지하는) 사이에 만리장성이 존재할 수 없다. 더욱이 원조 문제 또는 정부의 원조 부족이 정치적 연대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2004년 12월에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영국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후덕한 반응에 당황한 영국 정부는 애초의 인색한 원조 액수를 더 많이 늘렸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압력의 일부가 돼야 했다. 또, 2005년에 미국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쳤을 때 흑인과 빈민을 위한 지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것이 조지 부시의 정치적 신뢰를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제 이 글의 서두에서 말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긴급 원조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가자지구에 갇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이 글은 지난 2월 초에 쓰였다]. 그러나 시온주의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한 BBC는 가자지구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재난긴급구조위원회의 (기본적인) 호소조차 방송하기를 거부했다. 지속적인 친이스라엘·친시온주의 보도 뒤에 드러난 이 노골적인 편파성 때문에 가자지구에 대한 원조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제 원조 문제가 됐다.

두 가지 일반적 요점으로 끝을 맺겠다. 첫째,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일반적 이론과 원칙이 있어야 하고 필요하지만, 그런 원칙을 직접적 실천에 적용할 때는 단선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맑스주의자들에게 진리는 결국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전반적 투쟁 과정에서 혁명가들은 노동 대중의 분노와 그들의 인도주의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둘 다에 관해 정치적 초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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