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노동자들은 즉각 파업 돌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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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벽, 국민은행장 김상훈은 주택은행과의 합병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이틀 동안 본점 농성이 없었다면, 특히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계속된 살기를 띤 조합원들의 거센 저항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국민은행 현장 조합원들은 이 발표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이 은행과 정부측의 후퇴이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의 경계심을 잠시 늦추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현장 조합원들은 꿰뚫고 있었다. 현장 조합원들은 합병 논의 중단에 만족하려는 노조 지도자들에 반대해 합병 자체를 철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즉각 파업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 시간 만에 현장 조합원들이 완전히 올바랐음이 드러났다.
14일 오전 금감위원장 이근영은 노사정 본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주택은행의 합병 논의 중단이 "일시적"인 것임을 강조했다. 합병 자체가 물건너간 게 아니라는 것이다.
15일에는 국민-주택 합병 협상이 곧 재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 합병을 목표로 한 협상이 두 은행의 대주주 주도로 재개될 것"이라고 알려짐으로써 국민은행장 김상훈의 합병 논의 중단 발표가 하루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17일 광주에서 대규모 은행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리자 정부는 "노조의 뜻을 받아들여 인력·점포 감축 없는 합병"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또한 노동자들을 달래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점포가 겹쳐 있는 국민과 주택 은행의 경우, 합병이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낳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주택 은행 노조는 파업에 즉각 돌입하지 않고 있다. 16일에 열린 전국임시대의원대회에서 28일로 정했던 파업 일정을 나흘 앞당겨 22일로 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 주 내에 합병 논의를 마무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데 비하면 노조측 대응은 오히려 방관적이다.
오늘(18일)부터 국민-주택 은행 노조는 리본 달기, 점심 시간 동시 사용 등 준법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틀 간의 본점 농성에서 드러난 조합원의 엄청난 전투성을 고려한다면 수순밟기는 열기 식히기일 뿐이다. 이경수 국민은행 노조 위원장은 합병 논의가 재개되면 즉각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합병 논의 재개가 공공연해진 만큼 바로 지금이 즉각 파업에 돌입할 때다.
차장 팀장 협의회
16일 국민은행 노조 전국임시대의원대회에서 차장 팀장 협의회를 대표해 한 명이 연대사를 했다. "이경수 위원장을 중심으로 노조가 사태 해결을 하도록 지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엄청난 외압을 견디며 합병 중단을 선언한 은행장의 고뇌를 우리 함께 생각해 보자"며 은행 경영진이 처해 있는 압박에 조합원들의 관심을 돌리게 하려 애썼다.
그는 노조의 방향(목적과 수단 모두에서)을 온건하게 만들려 애썼다. 차장 팀장 협의회 성명서는 "합병 저지 투쟁은 은행장과 직원들의 투쟁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결국 은행측과 대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의원대회에서 연대사를 했던 사람은 농성 이틀째인 14일 새벽 4시경, 당장 파업에 들어가자는 조합원들에게 노조 위원장이 마구 밀리자 연단으로 뛰어올라가 노조 위원장을 편들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심지어 "합병 선언을 한다고 해서 곧 합병 절차에 들어가는 게 아니니, 합병 선언을 했다 해도 파업에 돌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당시에 조합원들은 "당신은 누구냐? 위원장의 답변을 듣게 비켜라." 하며 연단에서 그를 내려 보냈다. 하지만 걱정스럽게도 노조 지도자들은 차장 팀장 협의회에 의존적인 듯이 보였다.
차장 팀장 협의회의 이런 태도는 은행내 그들의 지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중간계급에 속하는 이들 집단의 맨꼭대기는 경영진과 닿아 있고 맨 바닥은 노동자들과 닿아 있다. 이들은 하나의 독립된 계급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력에 따라 이리저리 이끌리는 계급이다. 이것은 이들이 경영진을 이해하며 온건하게 행동하게끔 노동조합을 묶어 두는 구실을 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화이트 칼라 노동자 계급이 육체 노동자 계급보다 훨씬 더 위계적임을 고려한다면 직장내 상하 관계가 어떤 구실을 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계급이 항상 회사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중간계급은 지금 승진은커녕 해고될 위험에 처해 있다. 노동조합이 강력하고 단호하게 싸운다면 이들의 온건화 영향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들을 노동자 투쟁의 규율에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
금융노조
16일 국민은행 노조 전국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매우 강경하게 발언해 큰 환호를 받았다. "합병 선언 후 즉각 파업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합병을 한번 선언하면 절대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합병 선언 전에 파업을 벌여 두 은행장으로부터 합병 안 하겠다는 확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금융산업노조가 파업 일정을 28일로 잡아 두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이용득 위원장은 "국민-주택 은행이 선도 파업을 해라. 그러면 여러분을 지지하기 위해 28일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산업노조 산하 노조 모두가 국민-주택 노조와 함께 파업을 앞당겨 들어가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더구나 평화·광주·경남·제주 은행 노조도 22일에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몇몇 은행 노조에게 먼저 나서라고 하기보다는 함께 투쟁에 돌입한다면 정부를 물러서게 만드는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