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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석 영화칼럼:
〈마더〉 ─ 인간에 대한 예의

〈E.T〉(1982)로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모든 작품들은 영화 연출의 교과서다. 얄팍한 주제의식 때문에 비평적인 점수가 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면 연출의 솜씨를 놓고 보면 그와 견줄 만한 동시대 감독은 없다. 카메라의 위치,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감, 장면의 시점, 연기 연출, 컷(Cut)의 경제성과 리듬감 등 연출의 모든 면에서 그는 탁월한 장인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들 중 스필버그의 작품처럼 연출 교과서의 반열에 오를 만한 영화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다.

〈마더〉는 정신지체인 아들이 살인누명을 쓰자 엄마가 필사적인 구명 노력을 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엄마는 법과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무법천지의 황야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서부극의 카우보이처럼, 엄마는 스스로 탐정이 되고 취조관이 돼 사건을 파헤친다. 하지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엄마의 육체적, 물리적 고난은 도덕적, 정신적 고난으로 변해간다.

〈마더〉의 내러티브는 빈틈이 없고, 모성애를 다룬 주제의식은 독창적이지는 않으나 ─ 영화의 유일한 흠이다 ─ 나름으로 의미가 있다. 수천 컷에 달하는 장면들 하나하나의 밀도는 압도적으로 높다. 돈을 많이 들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연출의 세밀함이 스필버그처럼 탁월하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캐릭터의 조형술이 탁월하다. 극중 인물들이 원래부터 실재한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동시대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풍부한 입체감과 질감으로 묘사했다. 이런 성취는 인간에 대한 성실한 통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더〉는 인간에 대한 예의로 충만하다고 하겠다.

사회 현실

물론 인간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이런 영화적 세공술이 봉준호 감독만의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 사회적 격변을 겪던 1960년 대말 미국에서 출현한 아메리칸 뉴웨이브 영화들이 그런 기법의 대표 주자다.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1969) 등으로 시작된 뉴웨이브 영화들은 기성 헐리우드 영화의 장르적 전통과 결별하고 동시대 인간과 현실의 희로애락을 주의 깊게, 그리고 입체감 있게 스크린에 담았다. 이런 흐름은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마지막 상영관〉(1971),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도청〉(1974) 등과 같이 진중한 드라마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라 불리는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1973)를 봐도 그렇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귀신이 나오는 분량은 십여 분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등장인물들과 현실의 질감을 높이는 데 할애된다.

〈마더〉는 여러모로 아메리칸 뉴웨이브 영화를 닮았다. 잘 생긴 원빈을 보고 싶은 관객이든, 모성애 담론이 궁금한 관객이든, 2009년 한국 사회 현실이 궁금한 관객이든, 그 누구든 간에 이 영화와 함께하는 두 시간은 분명 만족스러울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영화란 모름지기 스타일에서든 내용에서든 극단적이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 하드코어 취향 관객들이 되겠다. 그런 이들에겐 이 영화의 조심스런 균형감이 못마땅할 것이다. 이 경우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 〈허공에의 질주〉(1988) 등으로 유명한 거장 시드니 루멧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를 권한다. 어느 미국 중산층 가정의 처참한 자멸을 그린 이 영화는 85세 노장 감독이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차 없이 날카롭다.

여담으로, 엽기적인 에로틱 드라마 〈피아니스트〉(2002)로 우리를 경악시켰던 미카엘 하네케의 신작 〈하얀 리본〉과 덴마크의 악동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가 곧 수입될 것 같다. 둘 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탄 덕분이다. 그런데 〈하얀 리본〉은 영화제 관객 일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만큼 불쾌하다고 하고, 악마적 공포영화라 불리는 〈안티 크라이스트〉는 기자들이 감독에게 왜 이따위 영화를 만들었느냐며 울분에 찬 항의를 했을 정도로 잔혹하다고 한다. 하드코어 관객이라면 두 영화 모두 많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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