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6월 항쟁 계승, 민주회복 범국민대회”:
10만여 명이 되찾은 시청 광장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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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차벽도 정부의 엄포도 촛불을 막지 못했다. 5백여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야5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사회당) 등이 주최한 ‘6월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6월 10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국무총리 한승수까지 나서서 ‘집회 자체 촉구’ 협박을 하는 등 정부가 강경하게 집회를 막는 통에 야당의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전날 오후부터 밤새 광장을 지켜야 했다. 경찰은 끝까지 집회 행사 물품을 강탈하고 2만 명이 넘는 전·의경을 광장 주변에 배치해 집회를 방해했다. 그러나 결국 비난 여론에 못 이겨 서울광장을 잠시나마 촛불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집회 시작 전 저녁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갖은 협박과 경찰 차벽에도 서울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잘 보여 줬다.
집회가 진행될수록 대열은 점차 불어났다. 서울지역 대학 학생회들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조합, 촛불 시민모임 등 1천 단체가 참가했고 참가 연인원은 15만 명(집회 측 추산)에 달했다.
특히 정리해고에 맞서 점거 파업 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참가해 큰 지지를 받았다.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결국 광장에 다 앉지 못한 참가자들은 주변 도로에 대열을 이뤘다. 흡사 지난해 촛불 집회 당시의 광경을 보는 듯했다.
연단에서는 연신 MB악법과 민주주의 역주행, 부자만을 위한 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저항 호소가 이어질 때마다 지지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참가자들은 “민주주의 수호하자”, “강압통치 중단하라” 등을 외치며 6?10 항쟁의 진정한 계승이 무엇인지를 보여 줬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을 촉발시킨 두 열사의 부모님들의 인사말로 집회가 시작됐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는 “오늘 과연 모일 수 있을지 마음 졸였”지만 “(이렇게 집회를 여는 것을 보고) 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는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것이 20여 년 전 모습과 지금이 똑같다”며 “6?10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 이 여세를 몰아 국민의 뜻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야 4당 대표들도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우리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무시한다면 제2의 6?10항쟁의 시발점이 바로 오늘, 2009년 6월 10일 서울광장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명박 사과와 국정 쇄신을 요구하며 삼보일배 중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명박 정권을 시원스레 비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강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불량 종자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농민들은 싹수가 노란 종자면 밭을 갈아엎는다”며 “한나라당이 거대 여당인 국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이명박 정부는 정치집회라 안 된다고 말한다. 헌법에 나와 있는 3?1운동, 4?19가 벌어져도 광장에 못 나오는 것이냐. 전직 대통령이 정치보복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정치집회말고 체육대회를 하겠느냐”며 정부의 억지논리를 통쾌하게 반박했다. 이어 노 대표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대통령에게만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지 이제껏 독재자에게 임기를 보장해 준 적이 없다. 이명박식 사고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제 국민이 대통령을 바꿀 것이다”며 경고했다. 또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국회의원을 방패로 찍는 나라에 자유가 있는가, 정부 실책으로 망해 가는 쌍용차에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나라에 정의가 있는가”라 물으며 “이젠 제2의 6월 항쟁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이명박 정부에 맞선 저항을 호소했다.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상임대표는 이명박 정부를 “기억상실증 중증 환자”라며 “이제는 한나라당조차 반란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정부의 위기를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명박은 사과하라면 적당히 사과하고, 내각 사퇴 하라면 더 나쁜 놈을 앉힌다”며 “MB악법을 폐기하고 부자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물러서선 안 된다”고 저항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백승헌 대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을 거라 그동안 믿어 왔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값비싼 수업료를 내는 셈이다”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행동에 나설 필요성을 지적했다.
결의문 낭독 후 이어진 2부 집회에서는 촛불 소녀의 발언이 큰 호응을 얻었다. ‘청소년 다함께’ 활동가 송조은 씨는 학교 측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연단에 서 박수를 받았다. 송 씨는 “이명박은 자신이 서민대통령이라며 서민들에게 경제 위기를 전가한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면서 쌍용차 인원 감축을 추진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위선을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살인정부다. 용산 철거민이 죽고, 박종태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미친 교육제도 때문에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정신을 차릴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촛불 시민들도 더 큰 촛불을 만들자”고 힘주어 말했다.
용산 대책위, 박종태 열사 대책위, 쌍용차 가족 대책위의 대표자들이 동시에 발언에 나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용산 철거민 고 이상림 씨의 며느리 정영신 씨는 무대에서 “정권이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그들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태 열사 대책위 집행위원장이자 운수노조 위원장인 김종인 씨는 5월 16일에 이어 국민적 지지를 받는 2차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며 연대를 호소했다.
쌍용차 가족대책위 이정아 위원장의 발언은 특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씨가 “정부가 상하이차에 헐값에 매각해 쌍용차가 어려워졌는데 왜 정부를 놔두고 죄없는 노동자가 책임지고 쫓겨나야 하나 … 우리가 불의 앞에서 무릎 꿇거나 울 필요가 없다. 이제 평범한 주부에서 벗어나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 우리에게 힘을 달라.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말하자 함성이 쏟아졌다.
집회가 끝나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며 행진했고 참가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
이날 집회는 결국 명박산성도 저항의 함성을 막을 수는 없음을 보여 줬다. 진정한 6.10 항쟁 정신을 계승해 민주주의 수호와 1퍼센트 부자정권에 맞선 투쟁이 계속해서 벌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