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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과 “전략 한미동맹” :
“확장 억지”는 핵 공포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억지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이 평화와는 거리가 먼 위험천만한 동맹이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오바마 정부 또한 이 점에서는 전임 정부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였던 북핵 대응에서 두 정상은 대화를 통한 해결은 한 마디 언급 없이 온통 제재와 협박 기조로 일관했다. 이미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에 대한 반발로 북한이 플루토늄을 무기화하고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밝히는 등 제재와 강경 대응은 ‘북한 위협’을 더 키워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 뻔한 데도 말이다.

특히 한미 정상은 공동선언에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지’ 제공을 명문화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핵 없는 세계’ 구상을 내놓은 오바마는 결국 한 입으로 두 말한 꼴이 됐다.

미국이 제공할 것으로 여겨지는 ‘확장 억지’ 수단으로 거론되는 무기들은 핵무기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등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해 “국제 평화의 중대한 위협”이라던 미국이 북한 무기보다 압도적 파괴력을 지닌 무기들로 ‘평화’를 지키겠다니, 북한이 그 위선을 꼬집고 반발해 추가적 강경 대응의 명분으로 삼아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6월 15일 한미정상회담 규탄 기자회견. ‘침략적 한미동맹 강화하려 하는 한미정상회담 규탄한다’ ⓒ사진 임수현

이미 미국은 1956년부터 정전협정 조항을 일방적으로 어기고 한반도에 핵무기를 들여온 바 있다. 1991년 미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철거한다고 선언했지만, 지금도 한반도 인근에서 유사시 지원 가능한 핵무기만 수백 기에 이른다. 1990년대 이래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 훈련을 계속해 왔고, 게다가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한 핵 선제 공격 계획까지 내놓은 바 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북한 주민들은 미국의 핵 위협 공포에 떨어야 했고, 북한 정권은 이를 군사력 증강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번에도 북한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핵전쟁 위협”이라며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 개발을 강력히 추진할 의사를 천명했다.

지금까지 미국의 핵우산은 부족하기는커녕 한반도를 초토화시키고 남을 정도로 충분히 제공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핵우산 제공을 정상회담에서 명문화하게 됐는가?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위협’보다 ‘남한 위협’이 더 신경 쓰였던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미 1956년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지만,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한 것은 1978년이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와 미중 수교 가능성 때문에 미국의 핵우산을 불신하면서 독자적 핵개발에 착수해 거의 완성 단계까지 이르렀던 때다. 1960년대 초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제공 명문화 때와 마찬가지로,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명문화는 바로 박정희의 독자적 핵 개발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핵우산 제공을 노골적으로 밝혔을 경우, 의도치 않게 북한 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를 명문화한 것은 최근 남한 우파들 내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독자적 핵 개발론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 제공 명문화로 북핵 대응에서 한미 간 ‘찰떡 공조’를 과시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한미 간 이해관계의 균열을 봉합하려는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의 핵주권론을 지렛대로 이용해 미국과 공조를 과시할 수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한반도 주변은 점점 긴장이 고조되는 위험천만한 지역으로 변하게 돼, 동아시아의 평범한 민중은 핵전쟁 공포에 시달리게 됐다.

침략동맹화한 한미동맹

한편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양자·지역·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구축”한다고 선언했다. 기존의 한미동맹이 한반도 지역에 국한해 있었다면, 이제는 동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적 차원으로 동맹의 무대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 한미동맹 구상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됐다. 이는 미국과 남한의 처지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됐지만, 동시에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됐다. 이 때문에 미국은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동맹들이 더 커다란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다. 한편 남한 지배계급은 미국과 동맹을 통해 세계 곳곳에 개입함으로써 자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싶어 했다.

부시를 닮아가는 오바마와 한국판 부시인 이명박 ⓒ사진 출처 청와대

전략 한미동맹 구상이 이미 추진된 사례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이 있다. 이는 전략 한미동맹 구상의 핵심 내용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돼 있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 주로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 지역의 작전과 더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 등 세계적 차원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기동군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택과 제주의 두 기지가 바로 주한미군 기지 구실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리되면 이 기지들은 주한미군이 수행하는 군사 작전에 휘말릴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 아프가니스탄·이라크 파병 또한 한미동맹을 세계적 무대로 넓힌 것이었다. 이 파병들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에서 끔찍한 학살과 생활 기반 파괴를 가져온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과 점령에 협조한 것이다. 전략 한미동맹 구상은 이처럼 북한 위협에 대한 방어 명분에서 벗어나 이제 세계 각지에서 침략적 구실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구체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한미동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평화유지와 전후 안정화, 그리고 개발 원조에 있어 공조를 제고할 것”이라며 그 여지를 열어 놨다.

한미 정상은 “테러리즘,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해적, 조직범죄와 마약, 기후변화, 빈곤, 인권 침해, 에너지 안보와 전염병 같은 범세계적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자고 선언했는데, 범세계적 문제들을 일으키는 주범이거나 그에 일조하는 두 국가가 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이런 지구적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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