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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석 영화칼럼:
프레임의 정치학

필자 우원석 영화감독은 뉴욕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지금 작품을 준비중이다.

프랑스 누벨바그 ―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영화운동인데, 히치콕의 영화들처럼 감독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 훌륭한 영화라는 작가주의 이론을 대중화시켰다 ― 의 여성감독으로 유명한 아그네스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2000)은 아름다운 영화다. 고령으로 손을 떠는 72살 할머니가 하급기종 6미리 카메라에 조명도 없이 손수 찍었으니 속된 말로 화면발이 좋진 않다. 하지만 남이 버린 음식이나 썩은 농작물로 끼니를 때우는 프랑스 빈민들을 담담히 관찰한 이 다큐멘터리는 시선이 예리하고 견고하다. 또, 장면마다 기품과 유려함이 흘러넘친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아그네스 바르다의 카메라가 빈민들을 향할 때 영화는 객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버섯이 핀 자기 손을 찍으며 인생을 관조할 때면 더 없이 주관적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객관적 현실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인가, 주관적 연출이 주인공인 픽션인가. 영화의 객관성과 주관성이 융합·충돌하고 서로를 부정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인가. 객관성과 주관성, 이 둘의 경계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과연 명확한가.

영화에 숨겨 놓은 이런 질문들을 통해, 아그네스 바르다는 다큐멘터리 화면에 담긴 것이 순수한 현실일 거라는 관객들의 관습적 기대감을 은근히 허문다. “예술은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빌려 적용해 보자면, 그녀는 다큐멘터리의 꾸밈없어 보이는 진실도 본질은 연출되고 가공된 것, 즉 거짓이라고 한다.

“예술은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

이런 통찰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옳다. 우선 어떤 영화든 편집을 거치는데, 편집은 매우 주관적인 선택과 배제의 판단 행위, 즉 연출이다. 필름에 찍힌 현실은 편집되는 순간 생략과 변별의 과정을 겪는다. 이를 통해 현실의 시공간은 차원이 전혀 다른 영화적 시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관객들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현실을 접한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다. 그들이 접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연출자의 주관적 해석이다.

둘째, 편집을 안 거치더라도 마찬가지다. 촬영행위 자체가 주관적이다. 현실을 찍으려는 순간 촬영자는 프레임 ― 카메라 속 사각형 화면 구도 ― 속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배제할 지 결정해야 한다. 이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촬영자의 주관, 즉 정치·사회적 관점에 뿌리를 둔다. 그러므로 앤디 워홀의 〈앰파이어〉(1964)처럼 편집이 없는 실험 다큐멘터리 ― 엄격히 말해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도 편집은 있다 ― 나 편집이 필요 없는 스틸 사진들 ― 영화는 1초에 24장, 혹은 29.97장의 사진을 빠르게 넘겨보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속성이 사진과 같다 ― 에도 주관적 판단, 즉 가공과 거짓은 있다.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의 말 대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 (혹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 - 필자)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며 진행되고 있는 모든 상황에 간여하고 침범하며 … 더 결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우병대책회의 김광일 행진팀장의 책 《촛불항쟁과 저항의 미래》가 지난해 촛불 시위 인터넷 중계에 대해 보여 준 통찰은 날카롭다. 자발성주의자들은 인터넷 중계가 시위 참가자들의 자발성을 그대로 담았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사실은 자발성과 대비되는 의식적·지도적 요소가 있다고 김광일 팀장은 지적한다. 영화 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정확한 이야기다. 현실을 아무리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 같아도 그 현실을 프레임에 담는 순간, 즉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촬영자의 의식적인 해석이다. 자발성주의자들이 말하는 순수한 자발성의 단순한 중계란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다.

덧붙여, 어떤 이들은 촛불 시위 때 인터넷 중계를 통해 네티즌과 시위대가 쌍방 소통을 했기에 온,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본질을 따져 보면 소통을 한 것은 네티즌과 시위대가 아니라 관객(네티즌)과 연출자(시위 촬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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