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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스틸, 《혁명만세》:
쉽고 재미있게 만나는 프랑스 대혁명

흔히 사람들에게 역사란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생들에게 역사는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됐다는 둥,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둥 억지로 달달 외우는 것인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기득권 세력은 역사를 자신들 입맛에 따라 해석한다. 이명박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해 과거 권위주의적 독재 정권을 정당화하는 것도, 일본의 극우세력이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역사는 피억압 민중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해 싸웠던 역사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무수히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2백여 년 전 프랑스 대혁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 벌어졌던 프랑스 대혁명은 단순히 프랑스 사회만 뒤바꾼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혁명의 시작.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민중은 절대 왕정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했다.

18세기까지 프랑스는 왕정 국가였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국왕과 성직자, 귀족 등의 지배 세력이 무위도식하는 한편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파리떼처럼 새카맣게 죽어나갔고, 산 자들은 풀을 뜯어 먹었다.”

지배세력을 제외한 사람들은 제3신분이라 불렸다. 여기에는 은행가, 회계사, 변호사 등 부르주아지뿐 아니라 노동자, 수공업자, 소매상인 등 상퀼로트(부유한 자들이 입던 짧은 바지 퀼로트를 입지 않았다는 뜻)도 포함된다.

부르주아는 귀족보다 교육을 더 많이 받고, 흔히 재산도 많았다. 신분제의 넘을 수 없는 벽과 봉건제는 그들이 원하는 ‘시장’ 중심의 사회에 불합리한 장애물이었다. 이들은 혈통 때문에 차별받는 것을 원치 않았고, 재산과 능력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봤다.

1780년대 프랑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 미국 독립전쟁 등으로 막대한 부채가 쌓였고 잇따른 흉작으로 농민들은 굶주렸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국왕은 1789년에 세금 인상을 위해 성직자, 귀족, 제3신분의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삼부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서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3신분 대표자들은 스스로를 국민의회라 칭하며 투쟁에 나섰다. 민중들은 이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고, 결국 7월 14일에 프랑스 절대 왕정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했다. 국민의회는 봉건제 폐지를 선포했다.

희망을 꿈꾸게 된 민중

파리의 가난하고 굶주린 여성들은 국왕이 있는 베르사유까지 25킬로미터를 행진했고 2만 명의 무장한 남성들이 합류했다. 이들은 국왕을 파리로 끌고와 민중의 감시 아래 두었다. “짐이 곧 국가”라며 불과 얼마 전까지 절대 권력을 자랑하던 국왕을 말이다.

이처럼 프랑스 대혁명은 “자신의 역할이 섬기는 일이라고 배웠던 민중들이 대거 희망을 꿈꾸게” 된 사건이었다.

△마크 스틸, 《혁명만세》바람구두, 2008년, 352쪽, 17,000원

영국 코미디언이자 사회주의자인 마크 스틸의 《혁명만세》는 당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민중의 관점에서 쓰여진 훌륭한 책이다.

그는 오늘날 반자본주의 시위 현장과 비교하며 2백여 년 전 프랑스 민중의 투쟁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한다. 사라진 프랑스 왕실과 대비해 ‘살아 남은’ 영국 왕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롱을 퍼붓기도 한다. 마가릿 대처, 토니 블레어 등 현실의 지배자에 대해 날선 비판과 경멸도 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쉽고 재미나다. 마크 스틸의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적절한 비유는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혁명의 대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모자’를 억지로 쓴 채 파리로 끌려가는 루이 16세의 굴욕적인 모습을 영국 노동당 정치인이 사회주의 신문을 팔면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런던까지 가는 것에 비유한다.

흔히 프랑스 대혁명을 살육의 도가니 정도로 왜곡하는 주장은 여전히 많다. 혁명에 참가한 대중이 “단두대의 피 냄새에 환호하던 군중심리”(서울대 교수 윤석민)를 낳았다는 것이다. 마크 스틸은 이런 왜곡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반박한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파업도 심각하게 왜곡하는데 2백 년 전 일은 오죽하겠냐며 말이다.

흔히 혁명의 무자비한 잔혹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공포정치’를 든다.

1793년, 계속되는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혁명은 더 나아가지 못하면 반동이 도래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급진파 부르주아지(자코뱅파)에 반대하다가 권력에서 쫓겨난 온건파 부르주아지(지롱드파)는 지방으로 가 반혁명을 선동했고, 왕정 복고를 꿈꾸는 귀족들과 손을 잡았다. 이때 등장한 것이 ‘공포정치’다.

새발의 피

사람들은 구체제가 복귀하면 훨씬 더 큰 재앙이 올 것이라 확신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왕당파 군대가 파리를 점령했다면 자코뱅파보다 훨씬 더 소름끼치는 공포정치가 벌어졌을 것이고, 그야말로 피의 학살을 했을 것이다.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마크 스틸은 당시 상황을 “알카에다가 이미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점령한 뒤 영국을 침략하려고 배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 비유하며 그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공포정치는 무엇보다도 “1천 년 동안 지속”(마크 트웨인)된 왕정이라는 진정한 공포정치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됐다.

자코뱅파는 동맹이었던 상퀼로트의 요구가 부르주아지가 원치 않는 급진적 수준까지 나아가자 결국 상퀼로트 조직들을 탄압했고 혁명은 더 전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낳은 성과는 거대하다. 혁명은 1천 년 넘게 지속된 유럽 봉건제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냈고, 자유·평등·이성·과학 등 혁명의 가치는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가 근대 세계를 구성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도시와 농촌에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과 세계를 위해 영웅적 투쟁에 나선 위대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정치 팸플릿을 읽고 혁명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침략군과 반혁명 세력에 맞서 무기를 들며 직접 역사를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동안만 위대한 자들은 위대하다”(데물랭)고 외치며 국왕과 귀족들에 맞섰다.

이처럼 “무제한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과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지를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