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칼럼:
1930년대 세계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21세기 세계대공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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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미국의 고용 지표와 주택가격 지수, 유로 지역의 GDP 지표, 중국의 수출 지표, 한국의 고용 지표 등은 일각의 ‘경기회복론’과 달리 세계 주요 나라들의 실물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5월 중 미국의 실업률은 9.4퍼센트였는데, 이는 198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미국의 주택가격지수(S&P/케이스실러 지수)는 지난 3월 전년 동기대비 18.7퍼센트 하락했는데, 이는 전달의 18.6퍼센트 하락보다도 더 하락한 것이다. 미국 정부도 미국 주택가격이 2010년까지 계속 하락해 2006년 대비 총 41퍼센트 내지 48퍼센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GDP는 이미 18개월째 연속 감소를 이어가고 있다.
유로 지역의 경우 지난 4월 공업생산은 전월 대비 1.9퍼센트 감소하고 전년 동기대비 21.6퍼센트 감소했는데, 이는 1991년 이래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1분기 유로 지역의 GDP는 전분기 대비 2.5퍼센트 감소했다. 특히 독일의 수출은 지난 4월 전월 대비 4.8퍼센트 감소하고 전년 동기 대비 28.7퍼센트 감소해, 1950년 이래 최대 폭의 감소를 기록했다. 그래서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 지역의 플러스 성장은 2010년 중반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세계경제의 두 축 중 하나인 중국의 수출과 수입 역시 지난해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은 지난 4월 전년 동기 대비 22.6퍼센트 감소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전년 동기대비 26.4퍼센트 감소했다. 중국의 수입 역시 지난 4월 전년 동기 대비 23퍼센트 감소하고 5월에는 다시 전년 동기 대비 25.2 퍼센트 감소했다. 지난해 말 중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결과 투자와 내수소비가 일시적으로 급증하자,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른바 ‘디커플링의 재현’(redecoupling)을 운운했다. 하지만 ‘디커플링의 재현’은 현재 무려 4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는 중국의 수출의존도(GDP 대비 수출의 비율)를 감안할 때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오히려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소진되면서 중국 경제는 조만간 ‘경착륙’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최근 중국 경제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한국 경제 역시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1분기 GDP는 전분기 대비 플러스였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4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무엇보다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21만 9천 명 줄어 10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그래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한국 경제의 “경기 하강 속도가 완화되고 있지만 아직 하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6월 12일)고 말했다.
지금은 21세기 세계대공황의 들머리
올봄 금융시장이 다소 진정되고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자, 세계 지배계급과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경제 위기의 ‘긴 겨울’이 끝나고 경제 회복의 도래를 알리는 ‘새싹’(green shoots)이 돋아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새싹’은 실은 지난해 가을 이후 세계 주요국 정부들의 천문학적 경기부양, 구제금융, 통화팽창이라는 ‘캠플 주사’의 효과에 지나지 않았으며, 최근 실물경제가 계속 악화되면서 벌써 ‘노랗게 시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제(6월 15일) 미국의 주식시장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필자는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저하 공황 이론에 근거해 지난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때부터 이번 세계경제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21세기 세계대공황으로 치닫을 것이라고 누차 주장해 왔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물론 일부 진보진영조차 이런 우리의 주장을 ‘만년 위기론’이라고 무시했다. 하지만 대표적 주류 경제학자 아이켄그린(B. Eichengreen)과 오루르케(K. O’ Rourke)의 최근 연구는 현재 세계경제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하다는 우리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잘 뒷받침한다.
아이켄그린과 오루르케는 자신들의 분석 결과를 아래와 같은 세 개의 그림으로 요약한다. 우선, 〈그림 1〉에서 보듯이 현재 2008년 4월 이후부터 2009년 5월까지 14개월 동안 세계 공업 생산의 감소 추세는 1929년 6월 이후 시기와 거의 동일하다. 현재 독일과 영국의 공업 생산의 감소 속도는 1930년대와 비슷한 반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미국과 캐나다의 공업 생산의 감소 속도 역시 193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지난 3월 이후 세계 주식시장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그림 2〉에서 보듯이 2008년 4월 이후 현재까지 세계 주가의 하락 속도와 폭은 1930년대보다 더 빠르고 크다.
끝으로, 〈그림 3〉에서 보듯이 세계 무역의 감소 추세 역시 1930년대 무역 감소 추세와 비교할 때 훨씬 더 심각하다. 아울러 이 그림들은 현재 세계경제가 1930년대와 같은 세계대공황의 모드로 이미 돌입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경기회복론자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21세기 세계대공황의 단지 들머리에 있을 뿐임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