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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이정구 교수님의 폴라니 비판에 이견이 있습니다

폴라니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으로서, 〈레프트21〉 8호에 실린 이 교수의 글은 반가우면서도 불만족스럽다.

첫째, 이 교수는 폴라니가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세계 칼 폴라니 연구 역사에서 이례적으로 독창적인 주장이다. 폴라니 이론을 경제사학의 독특한 방법론이나 케인스주의의 한 형태로 계승하려는 온건한 연구자들도 폴라니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은 인정한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 교수가 글의 중간부에서 폴라니가 “뉴딜 정책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억제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재촉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즉, 폴라니는 출발점은 뉴딜일지라도 종착점은 사회주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분명히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주장했다.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시장을 민주적 사회에 종속시킴으로써 자기조절적 시장을 극복하려는 산업 문명에 내재한 경향이다. 사회주의는 생산을 직접 통제해야 하며, 시장이 자유사회에 종속된 유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산업 노동자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거대한 변환》, 2001년 영어판 242쪽)

이것은 폴라니가 영향받은 이론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폴라니는 오스트리아 망명 시절 오토 바우어의 ‘기능적 사회주의’ 이론과 오스트리아 사민당 정부의 ‘지방자치 사회주의’ 정책의 성과에 크게 감명받았다. 영국 이주 후에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로버트 오웬의 길드 사회주의를 흡수했다. 이들을 종합해 폴라니는 생산자들의 연합으로 구성된 민주적 사회주의 경제를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아마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만이 진정한 사회주의이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보는 것 같은데, 마르크스조차 폴라니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로버트 오웬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 어쨌든 사회주의자로 인정한 것이었다.

폴라니의 사회주의론이 실현가능한지, 약점은 없는지 등은 논란거리다. 이 교수가 그토록 강조한 지역주의적 대안도 논란거리다. 그러나 이 교수처럼 폴라니의 대안을 지역주의로 환원할 수 없다. 더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지역주의적 대안 추구는 언제나 실패했다”며 마치 폴라니가 자본주의 체제 내 지역주의를 주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민주적 사회주의

물론 폴라니는 대안 문제에서 매우 난삽한 주장을 했다. 그는 로버트 오웬, 오토 바우어, 스탈린, 프랭클린 루즈벨트, 민주적 사회주의처럼 이질적인 종류의 정치가나 정치에 대해 한번 이상 호의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혼란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폴라니에 영향을 받은 경제사학자 프레드 블록(Fred Block)은 폴라니가 《거대한 변환》을 쓴 10년간의 과정을 상세히 분석한 뒤, 스탈린을 포함해 현실 정치인이나 국가에 대한 폴라니의 지지는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차악에 대한 지지였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폴라니의 대표작 《거대한 변환》과 다른 주요 논문들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폴라니가 스탈린 같은 독재적 계획체제가 아니라 민주적 계획경제를 더 바람직한 대안으로 여겼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폴라니에 영향받은 사람들 중 태반은 폴라니의 사회주의 사상을 체계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석훈 교수는 폴라니를 NGO류의 제3섹터 이론을 주장한 사람으로 해석한다.

다행히 급진 비교 경제학자 팻 데바인(Pat Devine)은 다양한 글들에 흩어져 있는 폴라니의 사회주의론을 꼼꼼히 분석하고 활용해 대단히 독창적인 민주적 계획경제의 상을 그렸다. 데바인은 시장과 시장사회를 구분해 시장사회는 폐지하지만 민주적 계획의 틀 내에서 시장메커니즘을 활용하자는 폴라니의 주장을 발전시켰다. 또, 관료 지식이 아니라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내생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폴라니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이 교수처럼 왜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냐고 교조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데바인처럼 폴라니가 민주적 계획경제를 연구한 사회주의자란 점을 인정하고 폴라니의 가능성을 더 발전시키는 방식이 유익하지 않을까?

둘째, 이 교수가 결론 부분에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구조가 필수적이다”고 말한 것은 폴라니에 대한 반박이 되지 못한다. 폴라니는 시장경제를 국가가 법 등의 제도를 이용해 뒷받침한다고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 자신도 글 도입부에서 “폴라니는 … 시장경제가 주된 경제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중상주의] 국가의 의도적인 정책 덕분이라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가 노동, 화폐, 토지를 상품화하는 법을 제정하고, 사법부나 경찰, 군대를 동원해 이를 관철시키려 했고 폴라니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었는데, 폴라니가 제도적 뒷받침을 알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가?

셋째, 이 교수는 이어서 “폴라니가 말한 사회에서 탈착근(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확립)과 거대한 변환(사회의 자기조정)을 통한 사회의 안정성 회복의 논리는 너무 기계적이고 단선적이다”고 비판한다.

일단 내가 머리가 나쁘고 과문한 탓인지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논리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뒷 문장은 말 자체는 옳다. 그러나 폴라니 자신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폴라니에 대한 비판이 될 수는 없다.

폴라니는 때때로 낙관론을 펴기도 했지만, 세계혁명의 확산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는 훨씬 덜 낙관적이었고, 사회가 자동적으로 안정을 회복한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폴라니는 이중운동에서 자유방임 시장을 향한 운동은 국가의 개입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지지만 그에 맞서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운동은 조직적이지 않고 산발적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자유방임은 계획적이지만, 계획[을 향한 움직임-역자]은 그렇지 않다.”(《거대한 변환》, 2001년 영문판, 147쪽)

오히려 폴라니는 자본주의 틀 내에서 시장에 개입해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이 시장경제의 작동을 교란시키면서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시장에 맞선] 반대 운동이 사회 보호에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시장의 자기조절, 궁극적으로는 시장체제 그 자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거대한 변환》, 2001년 영문판, 136쪽) 폴라니는 대공황의 발생 원인으로 자유방임 경제와 그에 맞선 어설픈 반대 움직임이 충돌한 것을 말한다. 폴라니는 사회가 시장경제를 물리치고 안정성을 회복할거라는 “너무 기계적이고 단선적” 주장을 하지 않고 대신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뛰어넘은 민주적 사회주의만이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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